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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오세암>과 기획만화출판의 현황

‘만화’가 보고 싶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기사나 논문, 세미나 원고에서 늘 거론되는 단어가 ‘원 소스 멀티 유즈’와 ‘만화원작 활용’이다. 하지만 올해로 탄생 20주년을 맞이한 <아기공룡 둘리>의 사례나 1980년대 후반에 제작된 TV애니메이션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공한, 혹은 기억에 남는 만화원작의 활용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애니메이션 기획자가 만화를 모르는 이유와 만화의 저작권자가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이유가 모두 만화원작 활용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5월1일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오세암>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출판을 멀티 유즈의 일환으로 접근해 개봉에 맞춰 만화 <오세암>을 출판했다. 이것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만화시장인 어린이 교양만화로 기획·출판되었다.

웃음과 눈물의 앙상블

만화 <오세암>의 장점은 그 안에 애니메이션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의미에서 <오세암>의 단점은 만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애니메이션 <오세암>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만화 <오세암>을 봤다면, 만화를 대하는 자세나 독해의 방법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좋은 기억은 만화 <오세암>으로 이어진다. 만화 <오세암>은 정채봉의 원작 <오세암>을 만화로 옮긴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오세암>을 만화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본 관객은 만화를 읽으며 감동을 복기할 수 있다.

그래서, 만화 <오세암>을 이야기하기 전에 애니메이션 <오세암>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오세암>은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대한 비극적 전망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75분 동안 진행되는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쓸데없는 노출신도 없고, 지루한 이미지의 반복도 없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서사는 꽉 짜여져 웃음과 울음을 이끌어낸다. 웃어야 할 곳에서는 웃음이 나오고, 울음이 필요한 자리에선 울음이 나온다. 관객을 무시하고 앞서 나가지도 않고, 관객의 거리를 모르고 저 뒤에 뒤서지도 않았다. 캐릭터는 트렌드에 좌우되지 않았고, 곧은 심지를 갖고 그 자리에 있었다. <하얀마음 백구>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이 진보의 경험은 후속작에 투여되어 더 좋은 결실이 맺어질 것이다.

만화 <오세암>은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서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연출의 구도도 흡사하다. 차이라면 애니메이션에서 빠진 대사 몇줄뿐이다. 그래서 만화 <오세암>은 자기정체성을 지닌 만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칸으로 옮긴, ‘번안만화’다. <이문열 이희재의 만화삼국지> <가시고기>가 소설을,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을 번안했다면, <오세암>은 애니메이션을 번안한 것이다.

자판기 기획만화들

번안만화 <오세암>은 최근 무수히 출판되는 기획만화의 허점이 그대로 노출된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는 <가시고기>나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히트작 기획만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세밀한 묘사나, 작가의 해석이 살아 있는 연출 대신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충실히 빠르게 옮기는가에 중점을 두어 표준적으로 그려졌다. 그렇다. 이 만화는 표준적인 교양만화들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는 만화가 아니다. 오히려 원작의 힘에 기대 더 많은 웃음과 감동을 준다. 하지만, 만화 <오세암>은 이야기를 벗어나면 다른 만화와 구분되는 만화 <오세암>만의 특징을 찾아내기 힘들다. 마치 작화 스타일이 똑같은 공산품처럼, <오세암>은 선배들이 걸어간 관습을 답습한다. 칸 나누기나 칸 연출(숏, 앵글, 배치, 배경 등)은 매우 관습화되어 있으며, 채색 또한 포토숍을 이용해 약속된 색을 찍어 넣은 정도에서 멈추어 있다. 도식화된 만화는 쉽게 독자를 만날 수 있지만, 깊은 감동에는 이르지 못한다.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초등학생용 교양만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돈들은 작품의 완성도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지명도 있는 원작을 끌어오는 데 광고를 하는 데 투자된다. 지명도 있는 원작과 엄청난 물량의 광고를 내세워 성공을 기획한다. 교양만화 광풍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제대로 된 교양, 지식보다는 손쉽게 만들어진 학습이 판을 친다. 시장의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쉬쉬할 때가 지났다. 더이상 방치하면, 오랜만에 만들어낸 어린이 만화시장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지금, 막연히 만화가 좋아 학습만화에 빠지고 있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곧바로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른들에게 유명한 원작의 지명도로도, 수많은 신문광고로도 성공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