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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명감독들 최첨단 <애니매트릭스>
2003-05-02

〈매트릭스〉의 제작자 조엘 실버가 미국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의뢰해 만든 〈애니매트릭스〉가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난 26일과 27일, 두차례 상영 모두 매진된 이 애니메이션은, 기계가 지구를 점령한 뒤 인간의 몸을 가둬두고 양육하면서 에너지를 빼어쓰고 인간의 두뇌에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를 연결시켜 환상 속에 살게 한다는 영화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그대로 빌려온다. 그 틀 안에서 9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각각의 에피소드를 다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연출했다. 에피소드 9개 중 4편은 〈매트릭스〉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직접 각본을 썼다.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건 이 중 6개의 에피소드이며, 나머지 세개가 보태져 오는 6월 중 전세계에서 동시에 디브이디로 출시될 예정이다.

전주에서 상영된 6편의 에피소드의 감독들은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무사 주베이〉의 가와지리 요시아키, 〈이온 플럭스〉의 한국계 미국인 피터 정,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마에다 마히로, 〈파이널 판타지〉의 앤디 존스. 이들의 조합만으로도 애니메이션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완성된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화면을 연출하면서 세계 최첨단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마에다 마히로는 ‘두번째 르네상스’ 1, 2부를 통해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에서부터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기까지의 전사를 들려준다. 색감이 모노톤에 가까운 탓에 덜 선명한 아쉬움이 있지만, 기계 디자인의 세련됨에 더해 검푸른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기계군단과 인간들의 전투 장면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가와지리의 ‘프로그램’은 매트릭스에 저항해 싸우는 인간 전사들이 시뮬레이션 게임 안에서 자기들끼리 벌이는 대결을 다룬다. 〈무사 주베이〉처럼 굵은 테두리선으로 그려진 남녀 두 캐릭터가 닌자 복장을 입고서 일본 성(城)을 무대로 싸운다. 검은색과 흰색, 붉은색의 단색톤으로 처리된 배경화면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펼쳐지는 둘의 대결은 가와지리 요시아키답게 자극적인 비장미를 풍긴다. 와타나베의 ‘추리소설’은 잘 그려진 흑백의 삽화책을 빨리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트릭스 안에서 탐정으로 살고 있는 이가, 매트릭스 밖의 저항군과 만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돌아간다. 양복 옷감의 질감까지 살려낸 삽화체의 화면과 함께 50년대 할리우드 누아르 영화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피터 정의 ‘허가’에서는 저항군이 기계전사 하나를 붙잡아 가상의 세계에 끌어들여 인간의 편으로 세뇌시킨다. ‘역 매트릭스’라고 부를 법한 이 가상세계를, 피터 정은 노랑, 연두, 분홍 등 채도가 낮은 원색을 활용해 동양적 명상 속의 공간 같은 분위기로 형상화한다. 앤디 존스의 ‘오시리스호 최후의 비행’은 〈파이널 판타지〉처럼 피부의 솜털까지 재현한 극사실주의 3D 애니메이션이다. 3D 캐릭터가 〈파이널 판타지〉보다 훨씬 생기를 띠며, 여전사의 섹시함은 실사배우를 능가한다. 화면의 속도감이나 색감의 자연스러움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개봉 당시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쳤던 〈파이널 판타지〉의 실험이 의미없는 게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듯하다. 이 에피소드는 〈매트릭스〉 제작사 워너브러더스의 영화 〈드림캐처〉(5월8일 개봉)에 보태져 극장에서 상영된다.

전주/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