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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개막작 ‘여섯개의 시선’
2003-04-29

지난 25일 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된 옴니버스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은 한국사회에 퍼져 있는 ‘차별’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는 현미경이다. 여기까지도 의미는 있다. 근데 개막식장에서 <여섯개의…>가 “한국 최고의 옴니버스 영화”라는 평까지 들은 데에는 그것이 냉철하거나 시니컬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인간을 따뜻이 감싸안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식, 다양한 주제, 높은 완성도의 단편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의 ‘계몽영화’가 아닐까 하던 기우를 단숨에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사진: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6가지 차별을

6개의 작품으로 "유머러스하게"조명

"한국최고 옴니버스 영화" 평가등 큰 호응

이현승 감독이 총제작지휘를 맡은 이 영화의 시작은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이 연다. 우리가 무심히 바라보는 광화문 도로가 장애인들에겐 ‘대륙’과 같은 곳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뇌성마비 장애인 김문주씨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음악감상’ ‘셀프 카메라’ 등 13개의 짧은 에피소드들은 웃음을 끌어내면서도 머릿속에 길게 남는 한 장의 사진같은 감동이 있었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걷고 말하지만, 해맑은 얼굴의 김씨는 영화제 전반부 최고의 인기 게스트였다.

두번째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은 기자회견때나 관객과의 대화때 가장 질문이 집중됐던 작품. 다름아니라 ‘성범죄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남자가 ‘그 남자’이기 때문이다. 오줌을 싼다고 아랫도리를 벗은 채 집에서 쫓겨나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이런 봉건성이 성범죄자라고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와 다를 것이 뭐냐고 묻는다.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초현실적인 공간과 깔끔하다 못해 기이한 주민들의 모습은 이 단편을 도전적으로 읽히게 한다. 세번째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은 현실과 초현실이 대비되는 공간에서 마지막 반전이 뒤통수를 쳤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에게 ‘얼굴값도 못한다’고 빈정대는 선입견은, 섬세한 감수성이 아니면 잡아내기 힘든 것이다.

관객들이 가장 환호한 작품은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다.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을 스케치했다. 근데 가볍지 않다. 사람을 따뜻이 보면서도 핵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풍자극이란 얼마나 유쾌한지.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는 다큐멘터리 같은 직설적인 화법을 택했다. 영어발음을 위해 어린아이에게 강요한 설소대 수술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부모의 미명 아래 아이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장면은 말 그대로 날것의 충격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찬드라의 경우>는 6년이 넘게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네팔인 찬드라 쿠마라 구룽의 실화를 소재로 한 '수작'이다. 이미 네팔에 돌아가있는 찬드라는 앞장면과 뒷장면에만 나오고(박감독은 사비를 들여 이 장면을 찍으러 네팔에 다녀왔다) 한국에서의 사건을 ‘찬드라의 시점’의 카메라로 재현했다. 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한국인을 그대로 폭로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 작품으로, 감독은 인간에 대한 넉넉한 시선에 도달한 느낌이다.

인권영화의 총제작비는 3억원. 중견감독들은 의미와 재미를 함께 한다는 게 무언지 그들의 열정으로 보여줬다. 국가인권위원회쪽은 이 영화의 극장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된다면, 관객들은 한국의 인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한국감독들의 새로운 재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