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補贖)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비평사 펴냄) 시집에 실린 고정희 시인의 <사십대>에서 발췌한 글이다. 고정희 시인은 한국 여성주의 문학과 페미니즘 사상의 한 중요한 모범을 기리고자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가다. 시의 열정을 불꽃같은 삶으로 이어갔던 그는 <사십대>란 시를 남기고 지리산 뱀사골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십대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자기 인생의 의미를 너무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었다.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補贖)의 거울을 닦으며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하는” 삶의 의미를 말이다.
지금 막 사십대 문턱에 들어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의 물음은 늘 반복해왔지만, ‘이제는 인생을 어떻게 마감해야 하지’의 성찰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갑자기 찾아온 조은령 감독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의 좌절감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한창 자신의 인생을 가꿔가야 할 삼십대 초반이다. 고등학교 때 단신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서 뉴욕대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나는 그가 막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만났다.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으로 넘쳐나는 강렬한 소녀였다.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영화인생의 목표가 너무나 분명했다. <스케이트>란 단편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최초로 갔을 때, 그와 2주 동안 함께 있었다. 하루에 3∼4편의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영화세계를 넘나들면서 희망과 확신을 가졌다. 그와 꼭!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내가 조은령을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인터뷰>란 영화의 조감독을 할 때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나는 변혁 감독과 영화를 준비할 때부터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실사와 다큐멘터리를 병행해야 하는 영화이기에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굳이 조감독을 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는 기꺼이 우리와 함께했다. <인터뷰>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부문은 조은령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책임감이 강했고 성실했다. 그리고 그는 틈이 나는 대로 영화사 한켠에서 혼자 기도를 했다.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 아뢰며,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의 단합과 영화를 위해 매일 같이 기도했다. 왜 그와 같이 착하고 신실한 사람을 하나님은 일찍 데려가셨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그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만날 때마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시나리오가 다 완성되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시나리오는 끝내 보지 못하고, 삼성의료원 영안실에서 영정으로만 그를 만나야 했다.
조은령의 영정을 보기 위해 함께 간 정재은 감독에게 썰렁한 농을 건넸다. “야, 정재은! 너가 만약에 죽었으면, 장편영화를 한편이라도 남겼으니 덜 서러울 텐데….” 고정희 시인의 말처럼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가 남긴 여백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그는 아직 거두어야 할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왜 그토록 빨리 가버렸을까? 누군가가 한편의 영화를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새삼 사무친다. 나에게는 앞으로 바라볼 시간과 기다릴 인연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고정희 시인은 이제는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으라고 한다. 조은령 감독의 죽음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고 손실이다. 나에게는 한번도 성찰해보지 못한 ‘죽음’의 의미를 일깨어주었고, 가톨릭의 계명인 보속의 실천을 진지하게 새겨보아야 할 시간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