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영국을 좋아하시나요?”신예 만화가 모리 가오루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연하죠. 그 시대는 지금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는 수많은 만화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니까요. 산업혁명은 쿵쾅거리며 내달렸고 빅토리아 왕조의 엄격한 윤리는 까탈스러웠지만 대중은 반항이라도 하듯 어두운 쾌락의 세계에 빠져들어갔죠. 메리 셸리의 공포, 코난 도일의 추리, H.G. 웰스의 SF와 같은 대중문학이 모두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지금 대중만화의 가장 중요한 ‘장르’들이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검은 옷에 흰 앞치마를 두른 여자, 당신의 만화 <엠마>는 당연히 홈스식의 영국형 추리물이겠죠. 무엇보다 확실한 건 그 여자가 ‘안경’을 썼으니까요. 하지만 모리는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혹시 메이드(하녀)는 좋아하세요? 저는 굉장히 좋아해요.”
어처구니없게도 <엠마>는 메이드 만화였다. ‘메이드의 옷은 반드시 까만 색으로’라는 신사의 고집까지 거들먹거리며, 독자의 관심보다는 만화가의 취향을 먼저 내세우는 만화다. 그러고보니 주인공 엠마의 안경도 총명한 두뇌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단지 안경잡이 소녀를 좋아하는 취향이 강하게 깃든 설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배신감은 신예답지 않은 차분한 필력과 감정의 전개, 그리고 유난스런 침묵으로 우리의 주목을 일깨우는 몇 장면을 지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저 그럴 것 같으면서도 이상스레 독특한, 비슷한 무리의 만화를 언뜻 떠올리기 어려운 별난 작품임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만화가의 뜻대로
등장 인물들 각자의 생각과 행동을 각자의 감성으로 보여주려는 만화가의 배려는 단정하면서도 섬세함이 깃든 표현들로 펼쳐진다.
엠마는 오랜 가정교사 생활에서 은퇴한 스토너 부인의 시중을 들고 있는 메이드다. 아직 과거나 가족관계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안경으로도 쉽게 감추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차분하면서도 온화한 성격 때문에 많은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 한때 스토너 부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부잣집 도련님 윌리엄도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상태이지만, 둘 사이는 쉽게 가까워질 것 같지 않다. 엠마의 수줍음과 윌리엄의 우유부단함은 조금씩 극복이 되지만, 같은 영국 안에서도 계급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고 믿는 윌리엄의 아버지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난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센스, 센서빌리티>의 제인 오스틴과 같은 영국 로맨스 소설의 전통을 이어받는 듯도 하지만, 이 만화의 전개는 그와는 꽤나 다른 분위기로 나아간다. 인도에서 온 왕자 하킴은 코끼리 부대로 거리를 폭주하고 자동차를 탄 채 빵빵거리며 실내를 달린다. 그리고 이러한 외적인 유머 반대편에는 맥락없이 썰렁한 이야기를 내뱉는 내적인 유머도 존재한다. 윌리엄이 엠마에게 말한다. “저, 제가 새 안경을 선물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니오. 실례되는 일입니다.” “실례라니요. 저걸 보세요. 새는 날아다니고, 고양이는 걸어가고 있죠? 또 저 아이는 넘어졌잖아요. 그러니까 아무 문제없다구욧!” 조금은 비현실적인 요소들, 맥락과는 큰 관계가 없는 듯한 요소들이 단지 만화가가 그려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화가 모리는 그 모든 걸 자신의 개성으로 엮어간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저, 제가 도서관을 그려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꼭 그 장소가 나와야 하나요?” “꼭 그래야 되냐구요? 저걸 보세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거대한 책장, 그 책장 가득한 고서들, 제각각의 옷차림으로 책을 읽고 빌리는 사람들, 멋지잖아요?”
단정하고 섬세한 표현
이런저런 취향의 유람은 이 만화가 지닌 하나의 본질이다. 만국 박람회, 이국의 손님, 새로운 발명품들…. 그 시절의 영국은 바로 그런 새로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이 만화가 그 본연의 이야기인 엠마와 윌리엄의 사랑을 그리는 데 소홀한 것은 아니다. 등장 인물들 각자의 생각과 행동을 각자의 감성으로 보여주려는 만화가의 배려는 단정하면서도 섬세함이 깃든 표현들로 펼쳐진다. 문득 대사가 사라지는 무성장면들은 덜컥 우리의 심장을 떨어뜨리고, 묘사 하나하나에 스민 인물들의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혼신의 집중을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공인 윌리엄보다는 하킴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장면들이 훨씬 깊은 질감을 만들어낸다. 윌리엄이 단지 ‘그녀가 좋다’라는 총체적인 감정을 보여준다면, 하킴은 그녀의 허리, 목덜미, 옆의 턱 선, 수건을 적시는 손길을 차근차근 살펴보며 점점 감정의 밀도를 더해간다. 반쯤 그늘에 가린 듯한 윌리엄이 엿듣는 가운데, 하킴이 엠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의 검은 얼굴, 짙은 눈썹, 압도적인 얼굴 클로즈업의 반복은 윌리엄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것은 작가의 실수일까, 의도일까?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