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다, 말세. 유부남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의 남자는 패주어도 시원찮을 그 유부남 밑에서 헤헤거리며 자청해서 운전 기사 노릇도 모자라 개인 비서 노릇까지 한다. 그 유부남은 문학 잡지 편집장인 한윤식(문성근)인데, 부자집에서 자라 아쉬운 것 별로 없고, 바람피우는 주제에 나름의 논리도 갖추고 있다. 그 논리란 것을 들어보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말인즉 이러하다. “바람도 못 피우면서 아내한테도 못하는 놈”보다는 “아내한테도 애인한테도 잘하는 것”이 “백 배 낫다”는 것이다.
빙충맞은 그 남자는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내성적이고 좀 덜떨어진 인간인데 그 잡지사에 복수를 하러 간 건지 돈벌러 갔는지, 여하튼 기자 노릇을 하는 이원상(박해일)이다. 여기에 정신 출장 보낸 여자 하나 더 있으니 그 이름은 박성연(배종옥)이다. 2차 지망으로 수의학과를 가서 수의사 노릇은 하지만 제 앞가림 못하면서 쓸쓸한 표정으로 담배나 줄창 피워대다가 그 남자를 만나 그 문제의 잡지사에서 사진 기자 노릇을 한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이 정신 나간 위인이 편집장과 사랑인지 뭔지 모를 요상한 짓을 하면서도 그 남자에게도 발 한 쪽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에고, 말세로고 말세로고!
관습과 이데올로기로 봉합된 세상의 찢어진 미세한 곳을 불안한 회의의 시선으로 보라, 그리고 관습과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벽을 무너뜨려라. 여기까지 굳세게 나아가지는 않지만,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들은 이 선상에 있다. 또 이런 영화들은 대체로 극적인 것보다는 일상적인 것을 선호하거나, 일상적이지만 상징적인 것을 다루기도 한다. 동시에 이야기 구조나 스타일에서도 다른 방식을 추구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모더니즘 영화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 감독)은 모더니즘 영화에 속하면서도 ‘일상성’을 배경으로 풍속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영화로 분류할 수도 있다. 지식인, 예술가, 부르주아 등의 위선을 처참할 정도로 드러내는 홍상수 영화가 자기 파괴적 모더니즘 영화라면, 이 영화는 세상을 다르게 보자는 ‘계몽형 설득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불륜, 탈선 등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탤 뿐이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일부일처제의 폭력성과 사랑의 배타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는 사회라든가 지배 구조 등은 지워져 있다. 단지 부유하는 인간만 있다. 맞다. 인간이란 게 원래 떠도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습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사납게 대든 셈이 된다. 하지만 마지막 시퀀스는 심한 진동을 안긴다. 한윤식의 딸과 이원상의 미래에 대해 어떤 암시를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 암시라면 <질투는 나의 힘>은 아주 멀리 나간 영화가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말세 타령을 하는 분들에게 정중하게 감자를 먹이는 귀여운 영화가 될 것이다. 여하튼, 그런데 나는 왜 이 평화로운 세상을 보면서 맥이 풀렸을까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