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
희한한 일이다. 일찍이 명동성당이, 더군다나 농성 중에 이렇게 고즈넉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라크 파병반대 농성 천막 안에는 아무도 없고 어둠으로 더욱 경건한 성당 본체 건물 옆에, 하얀색이 희미한, 그래서 다소 엄혹한 시멘트 바닥 위에, 웬 사람 열댓명이 성모마리아만큼이나 편안한 원을 이루고 돌아가며 나지막이 시를 읽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사회를 보는 것은 분명 최열(환경운동가)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최승호, 김상미, 박찬일 등 섬세한 시인이야 당연하지만, 이수호(전 전교조 위원장), 임진택(판소리꾼·연출가), 박호성(서강대 교수), 양길승(원진종합센터장), 그리고 무슨무슨 운동단체 사무국장, 무슨무슨 잡지 편집장…. 모두 수백명, 심지어 수천명을 대동하고 호령하고 심지어 동원하는 운동권 한 가닥들인데 오늘 이들은 적막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왜 적막하지 않고, 고요가 풍요롭지?
최승호는 정현종의 시를 읽고 이수호는 김용택의 시를 읽고 박호성은 곽재구의 시를, 누구는 도종환의 시를, 임진택은 박용하의 ‘풍자’시를 남도 판소리풍으로 고쳐 읽고 잠시 웃음이 일고 다시 어둠에 침묵의 파문으로 되돌아가고….
그렇다. 그때 바그다드는 함락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았다. 아무리 최첨단 병기란들 도대체 두 나라 군대가 한 나라 전체를 한달도 안 되는 동안 점령할 수 있다고 믿는 야만에 치를 떨며(왜냐하면 나라는 수천년 이어져온 나라며, 수천만명의 인구가 수천만개의 세계를 이루는 나라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짐승이다) 우리는 시끄러운 함성조차 숨을 죽여, 오로지 마음의 귀로 마음의 ‘평화=음악’을 걱정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바그다드는 함락당하고 있었다. 물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100년 전의 반제국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고요를 통해. 죽음을 닮은 아름다움을 위한 투쟁으로. 그리고 죽은 사람들조차도 죄없는 희생양이었으므로, 멸망하지 않았다… .
그 말을 위하여 우리의 집회는, 시는, 음악은 죽음의 위안을 닮아갔던 것일까? 원은 더 너그러워지고, 박호성은 고해성사했다. 저는 생전처음 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전처음 이 전쟁에서 이라크가 이기기를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미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그토록 쌀쌀한 날씨 속에서 안온을 희구했던 것일까? 그들의 기도는 이라크로 전해졌음이 분명하다.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김정환/ 시인 · 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