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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섀도 서울 공연,음악의 용광로

‘공연’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공연’들이 있다. 공연이라 하면 우선 무대 위에서 뮤지션이나 연기자, 댄서가 자기 몸을 움직여 현장에서가 아니면 듣거나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소리를 내거나 연기를 하거나 춤을 추어야 한다. DJ가 하는 디제잉(DJing)은 그런 의미에서라면 엄밀히 말해 공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가 트는 소리들은 이미 데이터로 저장된 것들이어서 어느 공연장에서도(만일 데이터 에러가 아니라면) 똑같이 재생된다. 그렇긴 해도 DJ의 공연 역시 공연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 재생되는 데이터들이 믹스되고 컷되는 과정에서 공연 특유의 ‘일회성’이 성취될 수 있다. 또 DJ의 공연 역시 특유의 현장감을 발휘한다. 유명 DJ들의 공연은 ‘틂’ 자체가 볼거리이기도 하다.

2003년 4월5일, 식목일이자 토요일인 날에 내한 ‘디제잉’을 한 디제이 섀도(DJ Shadow)의 ‘틂’ 역시 그랬다. 사람들은 그 비트에 적당히 춤을 추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디제잉 자체를 음미하는 분위기에서 파티를 즐겼다.

변변치 않은 하위 중산층 백인들이 모여 사는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헤이워드에서 태어난 DJ 섀도의 음악적 성공은 오히려 ‘소외’로부터 왔다. 가진 것 없는 흑인들의 ‘최소 장비’로 기능하기 시작한 턴테이블은 백인 중산층에게는 ‘혼자 노는 외로운 아이의 장난감’이 된다. 자기 침실에 틀어박혀 침식을 잊고 판을 틀며 컷하여 샘플링 따는 아이, 중고판 가게에 판 사러가는 일이나 아르바이트 하는 일 이외에는 외출도 잘하지 않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로서 턴테이블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백인들의 트립합적이고 세기말적인 턴테이블리즘이 비롯한다.

그는 공연 중에 무조건 음반만 트는 다른 디제이와는 달리 말을 많이 했다. 처음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그는 친절하게도 자기 장비를 소개했다. 두대의 테크닉스 턴테이블, 두대의 CD 플레이어, 그리고 아카이사에서 나온 전설적인 샘플러 MPC-3000과 디제이용 믹서가 그가 그날 쓴 기계들이었다. 그가 발표한 3장의 정규 앨범에서 골고루 선곡하여 현장 분위기에 맞게 리믹스하는 실력은 능숙했다. 역시 예상대로 앙코르가 나왔다. 앙코르곡으로 그의 대표곡 <미드 나잇>(<엔드트로듀싱> 앨범에 수록)이 나올 때 관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나 역시 그 곡이 나오자 약간의 전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면서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틀든 남이 틀든 그 어떤 <미드 나잇>도 똑같이 트는 것에 불과한데, 무엇이 나를 열광하게 하나. 이런 면에서, 디제잉을 구경하는 일은 일종의 선의의 ‘트릭’에 스스로를 빠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DJ 섀도는 어느 곡에선가 평화를 강조했다. 하긴 이 파티장의 분위기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사람을 포함하여 미국풍의 백인, 흑인, 심지어 러시아인과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적 구성을 한 관객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뒤섞여 몸을 비비고 흔들어댔다. 이 끈적거리는 ‘용광로’ 속에서는 전쟁 같은 것을 떠올리기조차 싫다. 하긴, 이 뒤섞임의 개념조차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이 공간은 미국의 연장선상에 있었다(사진제공 Sickboy Production).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