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한다면 펄쩍 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서고금의 이야기꾼들에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큼 흥미로운 주제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오비드의 <변신이야기>를 보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돌로, 짐승으로 변해버린 신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거니와 한때 여고생들의 애간장을 다 녹였던 하이틴 로맨스에는 비극적으로 파탄에 이른 사랑 이야기가 즐비했다. 한편으로 그 불가능한 사랑을 끝끝내 이루어지게 하고 싶은 것도 사람 마음이어서, 견우와 직녀처럼 1년에 한번이라도,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을 통해서라도 그 안타까운 사랑을 완성시켜주곤 한다. 하긴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냐는 이유로 양희은의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금지곡이 됐다고 하지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데 시간이 문제일 리 없다. 100년이건 천년이건 시공을 초월하고 싶은 것이 사랑에 눈먼 자의 욕심일 테니 말이다. SBS의 특별기획드라마 <천년지애>는 제목 그대로 천년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의 딸 부여 공주(성유리)와 백제 멸망 뒤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복신의 아들 아리 장군(소지섭), 그리고 신라 장군의 아들로 백제로 잠입해 들어간 김유석(김남진)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또 다른 주인공들은 아리 장군의 그림자로서 현재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고 있는 강인철과 일본 귀족의 외아들 후지와라 타쓰지로 다시 태어난 김유석, 그리고 느닷없이 2003년 강가로 뚝 떨어진 부여 공주이다. 이들 셋, 혹은 여섯명이 과거의 운명과 현재의 삶 사이를 오가며 벌이는 사랑과 갈등이 드라마의 큰 줄기다. 백제가 멸망한 해가 서기 660년이니 정확하게 1343년 만의 사랑과 갈등인 셈이다.
주말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KBS의 <무인시대>가 정통 사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면, <천년지애>는 백제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만 사극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제작진 스스로도 “멜로 70%, 코믹 20%, 역사성 10%”의 가벼운 트렌디물로 즐겨달라고 주문한다. 극중 의자왕, 김춘추, 김유신 등 역사적 실존 인물의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다만 그럴듯한 극 전개를 위해 필요한 소도구일 뿐 <천년지애>의 이야기는 이들 이름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가볍게 진행된다. 그래도 굳이 사극의 분류에 넣자면 삼국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천년지애>는 (제작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타지’ 사극 정도가 될 것이다. 피와 살점이 튀는, 살벌하고 냉엄한 <무인시대>에 맞대결하기보다는 달콤한 사랑과 재치로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쟁쟁한 중견 연기자들의 장으로 여겨져왔던 기존 사극과 달리 성유리와 김남진, 김사랑 등 연기경력이 비교적 짧은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도 좀더 가볍게 보아주십사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진 탓인지 아니면 신인 탤런트들이 내뿜는 젊은 생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방영 2주 만에 <무인시대>를 가볍게 제치고 시청률 20%에 진입했다.
문제는 이 드라마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상상력에 있다. 과거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들이 현재에 다시 환생한다는 이야기틀은 영화와 만화에서 질리도록 반복된 이야깃거리이다. 가장 가깝게는 <은행나무 침대>가 그랬고, 장이모와 공리가 진나라와 현재를 오가는 연인으로 등장했던 <진용>도, 주윤발과 임청하가 역시 같은 배경으로 운명적 사랑을 나누는 <몽중인>도 기본적으로 환생과 사랑이라는 구도에서 출발한 영화들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환생 이전의 삶에서 부여 공주와 아리 장군이 공인된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 정도.
물론 “새로운 이야기”가 좋은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는 사극은 더이상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장희빈>을, <허준>을 본다. 그 뻔한 결론에 감동받을 준비까지 단단히 하고서 말이다. <네멋대로 해라>처럼 진부한 설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가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천년지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천년을 뛰어넘은 환생과 사랑이라는 판타지의 상상력이 낳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상상력은 이제 진부한 것이 됐다. <천년지애>를 보면서 갖게 되는 아쉬움은 이 드라마의 설정이 진부해서가 아니라, 판타지에서 시작했으면서도, 그래서 TV드라마에서 보기 힘들만큼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기대케 했지만,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 별로 나아간 게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초의 기대에서 조금씩 멀어져간다.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패턴화된 상상력을 원용하는 데서 멈춰버린 것이다. 다시, 문제는 상상력이다.김형진/ 자유기고가 ofotherspac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