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평균 3~5편의 고전 영화들이 새롭게 복원된 프린트로 재개봉되어 적잖은 매표수익을 올리곤 하는 프랑스엔 요즘 무성영화가 화제다. 돌비니 디티에스니 하는 음향 시스템이 갖춰진 첨단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현란한 사운드에 파묻혀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에도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닳고 닳은 무성영화에 요즘 부쩍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바로 무성영화에 일렉트로닉 음악의 옷을 입힌 ‘시네 믹스’(Cine-mix) 프로그램 때문이다. 파리시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포럼 데지마주와 일렉트로닉 뮤지션 단체가 손잡고 올해 2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무성영화와 현대 전자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한달에 한번씩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영화에 어울리도록 창작된 곡을 전문 디제이가 라이브로 들려준다.
1920년대 후반 영화에 소리가 입혀지기 이전의 시절에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함과 동시에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극장에서 음악 연주는 필수였다. 이때 즉흥 연주되던 피아노나 아코디언의 역할이 현대의 최신 음악장르로 대체된 셈이다.
지난 12일 세번째 시네 믹스에는 지가 베르토프 감독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 가 상영되었으며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열정> (1928), 장 엡스텐의 <어셔가의 몰락> (1928) 등도 프로그램에 올라있다. 무성영화의 대표적인 고전들이 테크노 풍의 신디사이저 음악의 옷을 입으니 전에 보았던 영화라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800여 객석은 테크노등 전자음악을 즐기는 젊은 세대부터 무성영화를 즐기는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로 매번 만원을 이룬다.
이렇듯 시네 믹스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데 대해 시네마테크 대표 로랑스 에르츠버그는 “무성영화는 ‘살아있는 볼 거리’로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독창적인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또한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화를 만든 시네아스트와 그 작품을 위해 연주하는 뮤지션은 시공간적 차이를 넘어 대화를 나누게 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최근에 시작된 시네 믹스 외에도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 중엔 이미 5년 전부터 시작해온 ‘시네 콘서트’도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한달에 한번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클래식이나 재즈 등의 콘서트를 겸하는 형식으로 피아노 독주나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된다. 따라서 테크노 리듬에 실린 영화 한편과 클래식 음악에 실린 영화 한편, 한달에 모두 두 편의 무성영화 콘서트가 열리는 셈이다. 또한 만 3살~12살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풍성한데,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을 상영하면서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 설명을 위한 중간 자막을 과거 시절의 변사처럼 재미있게 읽어주는 식이다.
영화는 이미지에 소리를 결합시킴으로써 더 완벽해질 수 있었지만, 무성영화는 소리가 결여된 자리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리를 테크노로 채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네마테크의 노력과 관객이 보여주는 열정은 영화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파리/여금미·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