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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대작 <모노노케 히메> 25일 개봉
2003-04-15

자연과 인간, 공생은 불가능한가

<원령공주>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온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97년 작품 <모노노케 히메>가 25일 개봉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가 말하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한층 더 직설적이고 힘있게 제시하되, 단순한 자연과 인간의 대립 또는 공존을 넘어서는 영화다. 그 스스로 “최후의 대작장편”이라 부른 이 애니메이션은, 동물들이 아직 신의 모습을 간직했던 16세기 무로마치 시대 언저리에 걸쳐진 판타지와 역사의 중간계로 사람들을 이끈다.

생명의 신이 사는 숲, 신을 지키는 이들과 신을 죽이려는 이들 싸움이 벌어지고 신이 죽는다

감독의 ‘야심작’답게,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분노때문에 재앙신으로 변하고 만 멧돼지가 구멍마다 불길과 같은 촉수를 곤두세우고 마을을 습격하는 초반부 장면부터 숨이 막힌다. 2분10초의 이 장면을 위해 지브리 스튜디오는 제작기간 1년7개월과 5300장의 그림을 바쳤다. 이전엔 좀체 볼 수 없었던 잔혹한 장면들이 잇따른다. 숲의 정령 코다마가 있긴 하지만, 지브리 작품의 장기였던 귀엽고 웃기는 캐릭터도 없다. <이웃의 토토로><마녀의 특급배달> 등에서 언제나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주인공들이 비상하는 장면은 금기시되고 속도감을 가진 이미지는 횡적으로 뻗어나간다.

이야기는 재앙신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다 저주를 받게 된 아시타카가 저주를 풀기 위해 서쪽 태고적의 신이 산다는 숲을 찾아떠나며 전개된다. 아시타카는 사슴의 얼굴을 한 ‘시시신’의 숲에서 시시신을 지키는 300살 먹은 들개 모로 가족과 ‘모노노케(사람에 붙어 괴롭힌다는 원령) 히메’로 불리는 소녀 ‘산’을 만난다. 숲 아래에는 모로일가와 맞서는 미모의 여성 전사 에보시가 철을 생산하는 공동체 타타라마을을 이끌고 있다.

에보시가 조정에서 온 승려 지코와 함께 시시신의 목을 베기 위해 나서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생명을 피우는 시시신이 한없이 자비로운 것만은 아니다. 시시신은 “생명 그 자체, 삶과 죽음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그가 왜 생명을 주는지 또는 빼앗는지 아무도 알 수없다. 목을 베이고 난 시시신의 몸에선 거품같은 게 생겨나고 몸은 걸쭉한 유체로 바뀌어 대지를 뻗어나가며 대지를 모조리 태워버린다.

아시타카는 “산을 구할 수 있냐”는 모로의 질문에 “내가 구할 순 있나 모르지만 함께 살 순 있어”라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것을 꿈꾼다. 해결은 되지 않는다. 시시신의 숲은 다시 살아나지만 예전의 숲이 아니고, 아시타카의 팔의 상처는 엷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으며, 산은 “아시타카는 좋지만 인간은 싫어”라며 숲으로 돌아간다. 미야자키 감독은 무구한 자연에 대해 인간은 애초부터 더러움을 짊어지고 있는 존재로, 애초에 자연과 인간의 공생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 하다. 비관적인 그런 세계관 때문에, 영화는 선·악의 대립마저 무의미하게 만들며 내내 슬픈 정서를 띄게 된다. 하지만 500살 먹은 하얀 멧돼지 옷토코누시의 마지막 싸움과 코다마들의 웅성거림이 풍겨내는 비장함과 신비함 속에, 부조리한 삶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힘과 희망은 더욱 강렬하다. 제작한지 6년이 흘렀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상영시간 2시간14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