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명확하게 미국인의 총기 집착을 비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Bowlling For Columbine)의 장점은 낮은 톤의 목소리다. 영화는 뚜렷한 주제와 강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설교하듯 이야기하기보다는 깐족거리는 말투로 들려준다. 총기 규제를 주장하기 위해 시위장면을 보여주거나 운동가와 인터뷰를 하는 대신 총이나 총알을 얼마나 쉽게 살 수 있는지를 감독이 구매자로 가장해 보여주거나 총기사고를 낸 적 있는 청소년들의 한심해 보이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식.
그렇다고 영화가 120분 간의 상영시간에 총기 규제의 목소리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반대편 입장의 이야기도 무시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주장을 카메라에 담고 뒤에서 비난하기보다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투기를 주저하지 않는 편.
영화는 기본적으로 콜럼바인 고등학교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고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그 원인이 되는 미국인의 폭력성과 정치인이 조장하는 공포에 주목한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총기사건이 난 지역에서 뻔뻔하게 '총기 애호가 대회'를 여는 NRA 회장 찰턴 헤스턴, 언론으로부터 콜럼바인 총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당한 사타니즘 록가수 마릴린 맨슨, '왕따'의 설움을 만화로 극복한 사우스 파크의 작가들,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희생자들과 오클라호마 폭파 사건에 참여한 혐의를 받았던 제임스 니콜스 등.
감독은 이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광고, 총격 당시의 CCTV 화면, TV 프로그램의 장면 등 다양한 자료화면과 별도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등을 보여주면서 콜럼바인 사건의 원인을 찾아나선다.
<볼링…>이 다큐멘터리가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단번에 깨뜨릴 만큼 충분히 유쾌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화면을 통통 튀는 감각으로 섞어놓은 감독의 연출력 덕분.
총기 구입이 쉽다는 이야기 도중 이를 비꼬는 TV 프로그램의 코미디 장면을 편집해 넣는다든가 폭력성으로 악명높은 TV 프로그램 「COPS」의 프로듀서에게 경제범 검거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권할 때는 경찰이 기업가들을 강력범죄자 잡듯 체포하는 장면을 삽입하는 식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55주년 기념상과 지난달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인터넷 영화전문 사이트 IMDB(Internet Movie DataBase)의 네티즌 별점에서는 10점 만점 중 8.9점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베스트셀러 「멍청한 백인들」로도 잘 알려진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전을 직설적으로 비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제목 <볼링 포 콜럼바인>은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의 범인인 두 청년이 사건 당일 오전 볼링 수업을 듣기로 돼 있었다는 데서 착안했다. 25일 개봉.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