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도 이유도 없는
오래 전에 봐서 상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애니메이션 <심슨>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심슨네가 사는 스프링필드 마을에서 영화제가 열렸다. 바트는 뚱뚱한 몸 때문에 바지를 입을 때마다 낑낑대는 호머를 주제로 <영원한 분투>(eternal struggl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마을 사람들이 다들 영화찍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동네 사람들 대부분의 밥줄을 쥐고 있는 핵발전소의 번즈 사장에게 돌아갔는데 그의 작품이 정말 ‘판타스틱’이었다. 맥락도 없이 주인공이 용감하게 싸우는 장면, 착한 일 하는 장면, 관능적으로 보이는 장면- 당연히 주인공은 번즈였다- 이 줄줄이 등장하다가 급기야 마지막 장면에서는 번즈가 예수님처럼 후광을 뒤로 하며 성스럽게 골고다 언덕 위로 올라간다는- 물론, 이유없다- 영화였다.
한때는 <트레이닝 데이>라는 제정신의 영화를 찍었던 안톤 후쿠아의 손에 백지수표 쥐어주고 부시가 지도편달했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태양의 눈물>과 번즈 사장 작품의 감상 방식은 매우 흡사하다. 절대로 왜라는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제정신으로 극장을 나오기 힘들어진다.
관객의 경박스러운 탐구심을 시험하는 장면은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등장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속한 특수부대에 종족간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나이지리아에 가 여의사를 구출해오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단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국민은 한명이라도 세상의 모든 위험지역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하해와 같은 인도주의. 부시 아니면 상상도 못할 휴머니즘 아닌가. 감동적이지만 감독의 사려가 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민뿐 아니라 전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임을 감안해, 미국인 여의사가 아니라 그냥 모니카 벨루치를 구해오라고 했다면- 세계 여성의 미모지수 향상이라는 좀더 글로벌한 대의가 성립되지 않는가- 영화가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브루스 윌리스는 난데없이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서 모니카 벨루치와 함께 있던 민간인들을 데리고 가기로 맘먹는다. 왜냐고? 그는 부하 병사에게 “나중에 생각나면 이야기해줄게”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한다. “좋은 일을 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너 왜 이라크 침공했니?’라고 묻는다면 부시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생각나면 이야기해줄게, 켁.”(과자가 목에 걸렸음) 쓰러졌다가는 부스스 일어나서 문득 생각난 듯 대답한다. “어, 살림 어려운 친구들(군수산업체 및 석유회사)한테 좋은 일 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 밖에도 이 영화에는 번즈의 영화처럼 스타일 만빵에다가 휴머니즘 철철 흘러넘치는 장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와 시야에도 없었을 민간인 여성을 정확하게 잡는다든가, 총 맞고 죽어가는 병사가 쓰러져 있던 민간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싼다든가 등등.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비범함은 근래 몇년 동안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사라졌던 고전적 여성상을 복원해냈다는 데 있다. 의사인 모니카 벨루치는 한 인도주의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만 데려가겠다는 브루스 윌리스 일행의 입장을 단호히 거부하고 민간인들과 함께 도보로 탈출을 시도한다. 조용히 탈출하면 될 걸 그녀는 매사에 흥분하고 마치 쿠데타군에 들렸으면 하는 태도로 꽥꽥댄다. 그래서 민간인 몇명이라도 더 챙길 수 있는 인력이 그녀 하나 챙기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이동하면서도 수시로 “사람들이 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저 에버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벨루치보다 정글에 익숙한 민간인들은 그녀의 휴머니즘- 또는 그녀 자신의 피로-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주 쉬어야 한다. 덕분에 이들을 뒤쫓는 쿠데타군과의 거리도 좁아진다. 그리하여 미군과 민간인이 한명이라도 더 죽임을 당하는 데 일조하며 자신은 나중에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국경에 도착한다. 물론 영화 처음부터 풀어져 있던 앞단추는 끝까지 풀어져 있다.
남성에게 혹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서 시시때때로 일을 그르치고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게 만드는 여성이라니 실로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캐릭터인가. 온고지신이라는 성현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현하는 이 영화에 정말이지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리하여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영화에 화룡점정을 찍으신 영화의 정신적 지주 번즈 사장, 아니 부시께 말씀드리고 싶다. 범인들이 감히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이다지도 수준 높은 영화는 백악관에 앉아서 과자나 먹으며 혼자 보시기를.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