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늦은 밤 안 기자님(전 <씨네21>편집장이며, 지금은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인 안정숙 기자)의 전화로 전해 듣고 긴가민가 하는 상태에서 같이 영화를 준비하는 자칭 바보 의형제에게 전화를 했다. “장국영이 죽었대….”
“정말?? 대머리 때문에 그랬나?? 만약 사실이라면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네요….” 이렇게 통화하며 만우절 밤 대륙쪽에서 흘러온 대륙풍 뻥이겠거니 했다.
아침에 뉴스와 기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더욱이 자살이란 것에, 어젯밤 한 시대가 스스로 저물었다는 녀석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주윤발의 ‘밀키스’ 마시며 장국영의 ‘투유’ 초콜릿을 먹던 우리의 사춘기 시절이 이젠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 느낌이다. 사실 난 장국영보다는 양조위, 양조위보다는 주성치, 주성치보다는 오맹달을 좋아하는 뭔가 삐리한 선호도를 가졌음에도 그의 죽음 앞에선 뭐라고 할 수 없는 큰 애석함을 가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딱히 ‘난 장국영이 싫어’ 하고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그만큼 다양한 영화에 나왔었고 또 그의 사사로운 개인사 역시 심심치 않게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기 때문이리라. 미소년의 대명사였던 그…. 이쑤시개를 따라하며 보았던 <영웅본색> 시리즈, 챙챙챙 에에엥 하는 콧소리를 유행시킨 <패왕별희>, 꽃꽂이를 하던 셋째아들로 코미디 속에서도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진실(?)되게 보여주던 초컬트영화 <가유희사>, CF마저 열심히 따라하던 <아비정전>에서 혼자 춤추던 장국영의 실루엣, 뭔가 뭔지 알 수 없었던 <동사서독>, <백발마녀> <천녀유혼> <금지옥엽> 등등…. 음 그가 나온 영화는 정말로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홍보도 되지 않고 화제도 모으지 못했던 영화에까지 나왔던 그에게서 왠지 쇠락한 기운을 느꼈고 4월 만개한 꽃 한가운데 그의 자살소식은 우울한 아침을 안겨주었다. “어쩐지 장국영은 이럴 거 같았어요. <인지구>에서의 느낌도 죽진 않지만 느낌이 그렇잖아요.” 자칭 바보 의형제라고 부르짖는 친구가 아침에 한마디 했다. 그렇다. 바로 1986년 관금붕 감독의 <인지구>. 신문사에 근무하는 현재의 청년은 밤에 나타난 왠지 어색한 복장을 한 여자의 부탁으로 구인광고를 낸다. 구인광고를 낸 여자는 바로 기생 여화의 원혼. 그녀는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있다. 50년 전 그녀는 부잣집 도련님- 장국영- 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주위의 반대와 눈총으로 인해 장국영과 함께 음독 자살을 한다. 영화에서 장국영은 아편에 절어 기생 여화와 하루종일 함께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침대를 선물하는 등 방탕한 도련님의 전형을 연기한다. 구천에서 그를 만나지 못해 50년 만에 다시 그 동네의 골목을 서성이는 그녀. 현재의 남녀는 여화와 함께 그녀의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은 다른 건물이 된 유곽을 가보기도 하며 도련님의 흔적을 찾는다. 우연히 들른 골동품점의 스크랩된 기사에서 장국영이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기사를 보고 그를 만나러 가지만 그는 70살 노인이 되어 촬영장의 잡역부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늙은 아편쟁이로 쇠락해 있다. 아, 이때의 씁쓸함이란…. 장국영 도련님의 젊은 시절말고 뒷골목에서 아편을 피우는 늙은 거지 도련님의 우울한 실루엣. 아마도 귀신인 기생 여화마저도 마음이 아팠으리라…. 여화는 다시 저승길로 가고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봄날의 아침…. 기억의 아이콘을 잃어 우울한 나에게 바보 의형제라고 부르짖는 친구 왈 “장국영…음…대머리에 게이잖아요… 그래서 난 좋아요…. 뭔가 비밀이 있는 배우 말이죠. …<해피투게더>에서 양조위랑 키스하는 장면에서 양조위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괴로워하니 장국영이 양조위의 등을 두드려주며 ‘자넨 나와 키스신에서 이렇게 괴로워하지만 난 그 수많은 여배우와 키스신을 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냐’라고 말했다더군요.” “넌 바보 의형제가 아니라 천재로구나. 그런 좋은 기억을 이야기해주고….” 그 친군 바보 의형제가 아니라 바보의 형제였다.
46살의 미소년 아니 미장년 장국영. 공공연한 비밀이 있어 멋지고 어쩐지 외로움으로 느껴지던 그의 죽음에서 우리의 사춘기 시절…그 시절에 안녕이라고 말하기엔 봄날이 너무 눈부시다. 그리고 항상 이게 문제다. 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