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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 시스터즈>의 배경이 된 막달렌 수녀원 이야기
2003-04-07

신의 이름으로 처벌된 여인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가톨릭 교회는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혼란의 이유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톨릭 교회의 구태의연한 성 교리와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 성직자들의 충격적인 성 추문이 여기저기서 폭로되면서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바티칸은 낡은 성 모럴을 앞세우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쪽의 침묵을 강요하면서 자기방어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2002년 베니스영화제서 일어난 한 에피소드는 가톨릭 교회의 뒤떨어진 시대감각을 잘 드러내보인 전형적인 예다. 문제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피터 멀랜 감독의 영화 <막달렌 시스터즈>가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불거졌다. 60년대 아일랜드에서 실지로 일어난 가톨릭 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을 다룬 수상작을 놓고 토니니 추기경은 바티칸의 일간지 <오서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이 영화는 실제 교회와 맞지 않는 광포한 앙갚음의 선동에 불과하며 베니스영화제의 명성을 해쳤다”고 항의했다.

<막달렌 시스터즈>는 60년대 아일랜드에서 신의 이름으로 무참히 처벌된 여인들의 기막힌 삶을 희생자들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다규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다. 1964년 더불린 근처에 자리한 막달렌 수녀원의 감화원에 세명의 젊은 여성들이 들어온다. 사촌조카에게 강간을 당한 뒤 아버지의 고발로 신부의 손에 끌려 들어온 마가렛,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을 유혹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고아원에서 수녀원으로 보내진 버나뎃, 그리고 아기를 뺏기고 부모 집에서 쫓겨난 미혼모 로즈가 이들이며, 세 여인은 비슷한 죄명을 쓰고 수녀원에 평생 갇혀사는 수십명의 다른 여인들을 만나면서 수녀원의 실태를 알게 된다.

60년대 중반은 여성해방운동이 세차게 일던 시기였음에도 막달렌 수녀원의 일상은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혜의 수녀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여인들을 24시간 감시하면서 쉴 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에겐 구타와 삭발이라는 무서운 벌을 준다. 수녀들은 여인들을 발가벗겨 성희롱을 하는가 하면 담당 신부는 정신이 흐릿한 크리스피나에게 오럴섹스를 강요한다. 결국 학대를 견디다 못해 버나뎃과 로즈는 구사일생으로 수녀원을 도망쳐나와 사회로 돌아간다.

아일랜드엔 막달렌이라는 이름의 수녀원이 10개나 있었다. 50년대와 60년대 수감자들의 난동이 심했으나 교회는 줄곧 침묵을 지키며 뒷받침을 해줬다. 그러다 70년대 가정용 세탁기가 유행하면서 수녀원의 세탁소는 운영난에 부딪혀 대부분 문을 닫았고, 96년에 마지막 막달렌 세탁소마저 없어졌는데 그 사이 수녀원에서 숨진 여인은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달렌 수녀원의 실상은 90년대 초 TV나 연극 또는 음악을 통해 조금씩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교회의 성 모럴에 전면 도전했다는 면에서 멀랜의 영화는 가장 급진적이다. 그는 또 감화원 희생자에 대한 교회의 보상문제에 대해서도 앞장섰는데, 현재까지 교회와 국가를 상대로 고소한 여인은 3천여명이라고 한다. 바티칸 다음으로 가톨릭 교회의 영향이 강한 아일랜드에서 <막달렌 시스터즈>를 본 관객은 100만명. 즉 인구의 1/4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인데 이쯤 되면 왜 바티칸이 멀랜의 영화를 놓고 그처럼 발끈했는지를 알 것도 같다.

가톨릭 신자이며 사회주의자인 멀랜 감독은 1993년 단편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99년 첫 영화 <고아들>로 베니스영화제서 최우수작품 수상과 바르셀로나에서 유럽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그 밖에 대니 보일의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스포팅>, 멜 깁슨의 <브레이브하트>, 켄 로치의 <내 이름은 조> 등에는 배우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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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안자 / 해외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