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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온기,이상은 11집 <신비체험>
황혜림 2003-04-07

껑충한 키에 몇발 높은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상은의 음색은 남다르다. 푸근한 어쿠스틱 사운드에 내지르거나 쥐어짜는 자극없이 차분한 서정으로 흐르는 목소리, “도망갈 곳 없는 아파트 숲속에” 부대끼며 떠돌며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한 내면 혹은 의식의 풍경화 같은 음악. 대중음악에서 보기 드물게 영혼과 꿈, 시간을 읊조리는 시적인 가사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띠고, 간소한 어쿠스틱 포크를 축으로 동양적인 선율과 민속악기를 뒤섞곤 하는 음악은 신비로운 여운을 지닌다. 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아이돌 스타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 나선 지 어느덧 15년째. 이상은의 꾸준한 탐색은 평화로운 위안을 건네는 음악과 함께 고유한 색을 발하고 있다.

최근에 발매된 <신비체험>은 이상은의 11번째 정규음반. 2001년 10집 를 내고 그림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났던 그는, 사색과 관조의 거리에서 좀더 친밀하게 일상의 피부로 다가온 음악과 함께 돌아왔다. 평범한 공간인데도 디자인이 독특한 소품 하나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는 런던의 유학생활에서, 그는 새삼 일상의 신비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고. 그래서인지 <신비체험>에는, “사무실 계단에 앉아서 네가 쓴 편지를 읽어/ 메일로는 느낄 수 없는 종이에 남은 너만의 온도”라는 첫곡 <Soulmate>처럼 시적인 단상과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조화를 이룬 음악이 늘었다.

밝은 포크록 풍의 사운드에 낭랑한 보컬로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라고 노래하는 <비밀의 화원>도 마찬가지. 때로 난해하게 받아들여졌던 내성적인 사색의 무게를 살짝 덜어낸 음악은, ‘그만의 온도’가 몇도 올라간 듯 더 포근하고 편안하게 들린다. 이는 90년대 초반부터 6집 <공무도하가>를 거쳐 <Endless Lay>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로서의 창작과 더불어 “상업성이 아닌 대중성”을 고민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혹은 그가 예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젊음의 열기에 눈이 먼”, 그래서 “어두운 20대의 터널을 빠져나온” 때문일까.

그동안 고수해온 어쿠스틱 사운드의 친근함에 일렉트로니카, 공간적인 전자음의 변주를 들려주는 앰비언트를 결합한 변화도 눈에 띈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장영규가 프로듀서를 맡고, 오랜 음악 동지인 일본 뮤지션 다케다 하지무, KAYIP, 달파란 등 국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함께한 사운드는 훈훈하면서 초현실적인 공기를 지니고 있다. “무기를 던져버리고, 악기를 들어요/ (중략) 난 그저 작은 플루트일 뿐, 평화스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는”이라는 영어가사로 반전과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The World Is An Orchestra>는, 차갑지 않은 프로그래밍과 힘을 뺀 듯 온화한 금관악기의 편곡이 몽환적으로 어울려 있다. 어쿠스틱 기타에 장구와 생황을 동원한 <파라다이스>나 프로그래밍과 피리, 북을 뒤섞은 <Mysterium>처럼 동서양의 악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곡, 달파란의 프로그래밍과 편곡이 경쾌한 하우스풍의 <Supersonic> 등 목소리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친밀한 체온, 조금은 낯설고 풍요로운 전자음의 조화가 한층 성숙한 이상은의 음악 체험을 선사한다.(T-엔터테인먼트 발매)황혜림/ 객원기자 blau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