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그러나 가슴 뜨끔하게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어처구니없는, 허무맹랑한, 유치한, 열혈소년이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연애가 가능한, 싸구려처럼 보이는, 판타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등과 같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관용어다. 나는 이 관용어를 싫어했다. 영화잡지를 보다가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가 나오면 발끈했다.
만화는 역사 속에서 가볍지만 진실되게 시대의 모습을 표현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온,오프라인상에서 많은 반전 만화들이 나오고 있다. 위 만화는 <딴지일보>에 게재된 양시호의 작품.
내가 사랑하는 만화가 왜 너희들에게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로 활용되어야 하는가. 유사한 용어로 ‘삼천포로 빠지다’는 관용어가 있다. 물론 용법은 ‘만화 같은’과 매우 다르지만. 바보스러운, 주제에서 벗어난 등의 뜻을 갖고 있는 이 관용어에 대해 삼천포 시민들이 무척 반발했다고 한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삼천포라는 명칭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만화 같은’이라는 관용어에 흥분했던 나는 서서히 ‘만화 같은’이 지니는 장점들을 깨닫게 되었다. ‘만화 같은’, 이 관용어가 품고 있는 그 많은 의미가 사실 만화의 장점이라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만화는 역사 속에서 늘 진지하고 고상해지는 길을 걷기보다는 가볍고 유치하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길을 걸었다.
만화의 힘
그래서인지 만화는 신문, 잡지의 탄생과 함께 표현의 기법을 넘어서 근대적인 매체로, 장르로 처음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신문이 정당지의 성격을 벗어나 대중에게 다가갈 무렵, 만화는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지면에 등장했다. 생각해보면, 신문에 실리는 만화들은 형식적으로 매우 고전적인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뜨거웠던 시기 대자보와 유인물에 가장 많이 인용되던 대상은 사진도, 기사도, 연설문도 아닌 박재동의 만화였다. <한겨레신문>, 2면에 연재된 ‘한겨레그림판’은 매우 명료하고, 풍자적이고, 풍부한 서사를 바탕으로 당대의 이슈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전두환의 백담사행을 그린 한겨레 만평이나 인당수 시리즈, 참교육 시리즈 등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만화의 힘은 대중과 함께할 때 나온다. 최근 만화시장이 어려운 이유도 만화가 대중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작가가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과 작품이 대중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가 대중과 함께하면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들에게 만화는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대중과 함께하는 만화의 힘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염원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별것도 아닌 만화일 수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만화가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그 가슴에 불을 댕겨 평화의 불꽃을 피워내기를 기원한다.
전쟁반대, 파병반대
미국에 의해 이라크 침략전쟁이 시작된 뒤 모든 신문의 시사만화에서는 연일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국민일보> 3월24일치에서 서민호는 미군의 현대무기의 엄청난 가격을 열거하고, 부상으로 신음하는 이라크 어린이의 모습을 그린 뒤 “그럼… 이 아이의 고통은 얼마입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3월19일치 <한겨레21>의 ‘시사SF’(조남준)는 대량살상무기를 척결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풍자하고 있다. 시사만화뿐만 아니라 <스포츠투데이>에 연재 중인 김미영의 <기생충>, 김진태의 <쾌걸조로> 등의 만화도 매우 절묘한 풍자로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딴지일보>에 연재 중인 <The Show>도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 참여연대와 SBS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평화를 이야기합시다’는 캠페인 사이트에는 반전평화카드보내기라는 메뉴가 있다(http://www.peace2003.net/). 이곳에는 이기진의 컬러 시사만화와 김홍모의 플래시 카드, 이수연의 작품이 있다. 특히 <비행기와 꽃>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작품이다. 강도영은 자신이 작품을 그리는 여러 매체와 자신의 홈페이지(www.kangfull.com)를 통해 반전만화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여러 작품 중 이라크의 평범한 가정이 미사일에 살해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라크 가족이 우리의 모습으로 바뀐 만화는 우리가 왜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가를 매우 감성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홍승우의 <비빔툰>도 있다. 이라크 침공 소식과 우리나라의 파병소식을 접한 아들에게 이를 설명하는 정보통의 난처한 모습이 안타깝다.
어디 이뿐이랴, 오프라인으로 발행되는 정규매체는 물론 인터넷의 만화사이트를 서핑해보면 더 많은 전쟁반대만화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만화의 힘을 믿는다. 그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의 이성을 믿는다. 전세계인의 단결과 평화에 대한 소망을 믿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 전쟁반대 만화들을 모은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http://www.dugoboza.net/anti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