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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정신의 불가마 속으로,<서준식의 생각>
2003-03-31

‘서준식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치열한 정신의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불가마 속에 일단 들어가면, 운동부족이었던 마음이 소금땀을 흘리고, 사고의 동맥경화를 초래하던 정신의 지방질이 그 적나라한 두께를 드러낸다.

한국인에 대한 정신적 이지메가 횡행하던 시절, 16살 재일동포 소년으로 ‘나는 조센징’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고, 진정한 조센징이 되기 위하여 서울 법대로 유학올 때만 해도, 청년 서준식은 현대사의 제물로 예약된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작된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그를 스물세살부터 불혹의 나이까지, 17년 동안 세상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벽을 벽으로 느끼지 않았던 맑고 자유로운 눈한테, 군사정권은 7년의 실형과 10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내려, 오로지 벽만을 쳐다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문과 구타와 증오의 세월을 이겨낸 그가 바깥세상으로 가지고 나온 것은, 여전히 맑은 눈과 ‘어떤 벽도 인간의 존엄을 가둘 수 없다’는 늙지 않는 통찰뿐이었다.

88년 석방된 뒤 지금껏, 계급문제에 대한 고민을 포기하지 않은 드문 인권활동가로 15년을 더 보낸 서준식의 생각은, 그러나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편한 화두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의 생각은 ‘부채감’을 안겨주거나, ‘불편함’을 초래하는 무엇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체제 내에 편입되어 보수언론들의 적극적 후원 속에 급성장한 시민운동을 향해 ‘체제 안에서 이 체제의 영속을 도울 것인지, 그 바깥에서 체제와 싸울 것인지 선택하라’고 잘라 말한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고 감옥 안의 청춘을 자위했던 문부식이 또 다른 휘황한 말로 자신의 변신을 포장하고 있는 지금, 그는 ‘몸’이 따르지 않는 ‘입’을 조용히 질타한다. 시대의 왕따 한총련 학생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팔고 탈퇴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라고 권하고, 남성 진보진영이 온몸으로 화를 냈던 100인위원회의 성희롱 당사자 명단공개에 대해, “역사를 보면서 언제나 실감하는 것은 인권 개념의 발전과 외연 확대의 과정은 언제나 당대의 인권 담론의 테두리를 ‘폭력적으로’ 뚫고 나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라고 손을 든다.

그러니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개혁의 나르시시즘이 극에 달한 이 시절에, 그는 어쩌면 영화판의 켄 로치처럼, 고집불통 원칙주의자, 시대착오적인 투사, 열외의 존재로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입’으로 먹고사는 나 자신, 이 글을 다분히 분열적인 마음상태로 쓰고 있다. 그는 닮기가 너무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위안해보지만, 그의 생각에 귀 기울이다보면 글로만 하는 진보, 말로만 하는 운동에 대한 자괴감이 딱따구리처럼 양심을 쪼아댄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두 접시에 올려놓을 때 언제나 나의 저울대는 아쉽게아쉽게 ‘해야 할 일’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라는 그의 목소리에 내 것을 끼워넣을 수 없음을 알기에, 갑자기 손마디 똑똑 부러뜨리고 다른 밥벌이를 찾고 싶어진다. 다행인 것은, 그의 목적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가다듬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가 당당하게 강요하는 듯한 부채감과 불편함이 사실은 그로부터가 아니라 타협한 우리, 생각이 게을러진 우리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더불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자주, 아주 자주, 그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준식이라는 이름 앞을 절대로 스쳐지나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이유 중의 겨우 하나다.(야간비행 펴냄, 1만5천원)최보은/ <프리미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