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 형제의 취업 대혈투
서기 2010년 부도 직전의 통신업체 NOT 도모코(NTT 도코모의 패러디)에 근무하던 오이카와 시게루. 말많고 먹성좋고 매너없는 뚱보 남자. 그날 밤도 망신창이가 될 정도로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뭐 여느 때와 크게 다른 모습 같지도 않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 깨어난 곳이 신기하게도 10년 전 대학생 시절의 자취방 앞이라는 사실. 그저 우연이거니 해서 방문을 열어보는데, 맙소사, 방 안에 서 있는 건 바로 10년 전의 자신이 아닌가? 지금보다는 조금 날씬하고 젊어 보이지만 여전히 너저분한 행색에 마요네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취업 준비생이다. 왠지 과거의 오이카와가 측은해진 미래의 오이카와는 10년 뒤면 부도가 날 회사를 내던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두 오이카와의 멍청하고도 맹렬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나’를 위한 도라에몽?
사상 최악의 취업대란, 실업률 몇년 사이 최고, 20대 청년실업 문제…. 비슷비슷한 단어가 숨통을 조여온 지 몇년째인가? 풋풋한 젊음을 오직 일자리 하나만을 위해 내던져야 한다는 그 사실은, 이른바 386세대가 말하는 ‘시대에 내던진 젊음’ 못지않게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오랜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청년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신세인 것 같다. 명문대 출신도 아닌데 4학년 초에 취업을 하면 모두가 우러러보고, 그것도 1부에 상장된 기업에 들어가면 우르르 취업 비결을 들으러 몰려온다. 심하면 100군데도 넘는 회사에 원서를 내고 시험과 면접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그 과정은 흡사 마라톤과 같다. 대학생 오이카와는 그 장거리 레이스에서 선두 그룹도 2위 그룹도 아닌, TV카메라에 슬쩍 잡히기도 어려운, 겨우 참가에 의미가 있을까 말까 한 어중이떠중이 그룹에 속해 있다. 과연 그에게 미래에서 온 오이카와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게으른 초등학생 노비타를 구해보려고 미래의 후손이 보내온 <도라에몽>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로드리게스 이노스케의 <오이카와X2 취업일지>(대원씨아이 펴냄)는 좋은 소재에서 출발한 만화다. 취업이란 지금의 젊은 세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고, 승패가 분명한 경쟁의 게임이고, 당연히 수많은 변수가 엎치락뒤치락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1980년대 스타일이라면 모든 조건이 뒤처진 주인공이 화려한 경쟁자들을 기적적으로 물리치고 일류 기업에 입사하는 기업 극화식의 구조가 적당할 것이다. 기껏 그렇게 입사해놓고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며 박차버리고 새롭게 창업에 뛰어드는 ‘남자의 로망’으로 끝을 맺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드리게스의 21세기 취업만화에 스며든 당대의 코드는 ‘백수개그만화’ 혹은 ‘청춘개그만화’다.
<오이카와X2 취업일지>는 너절한 백수 코드에서는 <행복한 백수>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러 면에서 <그린 힐>의 후루야 미노루나 <초학교법인 스타 학원>의 스기무라 신이치의 청춘개그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변태한 취업만화
미래의 오이카와나 현재의 오이카와나 별다른 현실감각이나 열정없이 그저 ‘취업이 되면 좋겠다’는 안위주의자다. 나름대로 끈기는 있지만 그것은 현실의 강제일 뿐, 어디서 공돈이라도 생기면 맥주를 쏘아버리고, 추접한 속옷바람으로 더러운 방구석에서 드러누워 자는 게 제격이다. 그 주변의 친구들도 어떻게 경마로 일확천금을 벌어볼 수 있을까 하는 놈, 인터넷과 채팅으로 엄청난 취업 정보를 수집하지만 막상 도전은 하지 못하는 놈들뿐이다. <오이카와X2 취업일지>는 이 절반의 백수들이 펼치는 너절한 삶의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려 하고 있으나, 왠지 그것이 본연의 ‘취업만화’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오이카와X2 취업일지>는 그 너절한 백수 코드로 보아 하스코다 지로의 <행복한 백수>와 공유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여러 면에서 <그린 힐>의 후루야 미노루나 <초학교법인 스타 학원>의 스기무라 신이치의 청춘개그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나중 탁구부>풍의 인형처럼 크게 벌린 입과 대사없는 연속동작의 개그에서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지만, 방황하는 오이카와가 수련 과정에서 겪는 사건들은 매우 유사하다. 젊은 오이카와는 주점의 마담에게 몸과 정신을 빼앗긴 뒤 피라미드식 판매 회사에 뛰어들고, 나이 많은 오이카와는 언제나 무덤덤 무표정인 매스컴 지망 여학생 나카지마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 둘은 자신 외에는 안중에 없는 엄마에게 휘둘리게 된다. 뭔가 해보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언제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고뇌와 패배의 순간이 오면 뭐든지 마요네즈를 섞어 먹는 것으로 해소해버린다.
취업만화와 청춘개그만화의 만남 자체가 나쁠 이유는 없다. <오이카와X2 취업일지>는 그 점에서도 꽤나 매력을 만들어낼 만한 요소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것이 어중간한 상태로 뒤섞이면서 우리가 젊은 오이카와의 취업을 응원해야 할지, 나이 많은 오이카와의 자기성찰을 기대해야 할지, 그냥 생각없이 사소한 에피소드의 개그를 즐겨야 할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종횡무진 어지럽게 진행되던 사건은 오이카와와 친구들이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종교 집단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니, 어쨌든 취업 자체보다는 개그로 기울어진 듯하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