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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도시,<시카고>

■ Story

1920년대 혼돈과 환락의 시카고. 보드빌 스타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스타를 꿈꾸는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 역시 데뷔를 빌미로 자신을 이용한 한 남자를 살인한다. 교도소에서 만난 두 사람. 능수능란한 언론 플레이로 유명한 시카고 최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이 이들의 변호를 맡는다. 언론에 호소하는 록시의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그녀는 시카고의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벨마와 록시는 점점 더 앙숙이 되어가지만, 그녀들은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난다.

■ Review

영화 <시카고>에서 1920년대의 시카고는 더이상 갱단과 마약과 밀수로 범벅이 되어 있는 혈투의 공간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배경이겠지만 영화는 그냥 무시한다. 그 안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실화들을 가무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요소로 사용한다. 낱낱의 인과들을 쿨하게 무시한 뒤에 비트와 율동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 상황들을 가볍게 처리하고, 감정을 추상화하는 것은 이 영화가 선택한 장르적 기능에 따른 전략이다. 말하자면, 1975년작 봅 포스의 뮤지컬을 각색하며 이미 영화의 장르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장르의 기조도 결정해놓았다. 영화는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흥겨움을 위해 달려간다. 비난도, 고발도 없다. 총은 소도구가 되고 교도소는 스테이지가 된다.

얼마나 흡인력 있게 춤과 노래의 강렬한 무대 안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키는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남편을 죽인 여자와 남편을 속인 여자, 그리고 세상을 속인 남자와 세상에 속는 남자(록시 하트의 남편 에이머스)가 서로 한번씩 돌아가며, 또는 같이 등장하여 그 솜씨를 뽐낸다. 변호사 빌리 플린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형’ 록시, 자신의 ‘셀로판’ 같은 존재를 한탄하는 에이머스, 법정에서의 긴박한 ‘사기’를 탭댄스로 표현하는 빌리의 퍼포먼스 등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그 시선의 부름에 잡히는 순간 벗어나오기 힘들어질 정도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더욱이 남성 관객일 경우에는 빠져나오기 싫을 정도일 수 있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록시 하트의 역은 강화됐다.

그리고 벨마 켈리 역의 캐서린 제타 존스는 하드 보디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 나와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라. 누구에게 더 끌렸는지. 남성 관객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이 영화의 부수적인 목적이다). <시카고>에는 각각의 추상화된 캐릭터들이 생동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실제 보드빌(음악과 노래를 곁들인 익살극)의 배우처럼 기능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스테이지가 되면 차례로 등장한다. 이때 보드빌적 시청각의 요소에 집중될 수 있도록 내러티브의 복잡한 감정회로는 잠시 닫혀 있어야만 한다. 그 점을 위해서 <시카고>는 처음부터 ‘무시’하는 요소가 많은 것이다. 로맨스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보드빌의 배우처럼 인물들이 무대 위에 세워질 때, 당연히 무대의 앞쪽에 앉은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시카고>의 매력이며 장점이다.

인물들이 환상 안으로 빠져들어갈 때쯤 어김없이 무대가 펼쳐지고, 조명이 쏟아져내리고, 인물들은 그 위에 올라서서 각각의 장기를 선보인다. 영화 속의 뮤지컬 장면은 단 한번도 무대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 없고, 막이 오르기 전에는 언제나 소개 멘트가 있다. 그리하여 관객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러티브 공간 속의 긴장을 조금도 따라갈 필요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시카고>에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두개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무대와 그 바깥. 그것은 공간이 달라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뮤지컬영화에 무대가 나오는 것이 하등 특별할 것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근래에 나온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와 비교해보면 <시카고>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헤미안의 세계로 들어가 사랑과 자유를 뮤지컬영화 안에 담아내고자 했던 <물랑루즈>는 이상하게도 허술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시공의 깊이를 첨단화했고, 아름다운 로맨스를 등장시켰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음악적 요소들과의 긴밀성은 잃어버렸다. <물랑루즈>가 내러티브의 공간 안에서 음악적 요소들을 소화하려다 실패한 것이라면, <시카고>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소재에 입각한 공간화를 구분해놓았다. 사실, 대부분의 뮤지컬영화가 지향하는 것은 어떻게 그 내러티브의 공간에서 마음껏 뮤지컬 요소들을 화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벨마와 록시는 앙숙이 되어가지만, 둘은 결국 무대 위에서 손잡는다. 재즈의 시대, 그녀들을 위한 해피엔딩에 무대보다 적합한 장소가 또 어디있겠는가.

영화적인 상연, 즉 무대가 아닌 외부의 모든 공간을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가이다. 물론 원작과 소재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카고>는 그 반대의 방식을 강화함으로써 효력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것이 <시카고>의 매력이며 장점이다. 무대 위에 보드빌의 배우처럼 인물들이 세워질 때, 당연히 무대의 앞쪽으로 자리를 배정받은 관객은 남김없이 쏟아지는 시선을 따라 무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카고>는 ‘뮤지컬영화’라는 광의적 장르 범주 내에서의 생존전략을 고민했다. 그리고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소재에 걸맞은 과감한 전략화는 관객의 지각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짧게 뮤지컬영화라고 말하기보다 ‘보드빌을 카메라로 찍은 영화’라는 다소 어지러운 정의를 뒤따르게 한다. 자칫 퇴행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요소들은 영악하고 과감한 시각화해, 그 퇴행조차 감각의 즐거움으로 둔갑해버린다. 이건 거부하기 힘든, 즐거운 퇴행이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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