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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석<대한민국 헌법 제1조>
2003-03-25

정치를 조롱하면서 또 정치상품을 팔았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에 나오는 말이다. 새삼스레 헌법을 내세운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영화조차 참 새삼스럽다. 지난해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영화 <사방지>(1988) 이후 15년만에 연출한 송경식 감독의 영화라는 점도 그렇지만, 오십대 감독이 젊은 관객을 상대로 스크린 위에서 진심을 털어놓는 것을 보는 것도 그렇다. 그 약간의 진담을 위해 영화의 대부분은 패스티쉬로 채워졌는데, 그것은 나약한 포스트모던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적어도 십 년 뒤에 볼 영화다. 지금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고, 왜곡된 한국과 무엇인가에 강박된 한국영화를 이해하는데 적합하다는 말이다. 한 국회의원이 복상사함으로써 여야의 국회의원수는 똑같아진다. 이제 수락시 보궐선거의 투표 결과에 따라 여소야대 혹은 야대여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윤락녀 고은비(예지원)가 뛰어든다. 동료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지만 아무도, 심지어 경찰조차 무관심한 현실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완벽한 누드 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고은비는 몇 개의 장애물을 넘고, 몇 개의 해프닝을 겪는다. 영화의 욕망은 달성될 것인가, 즉 그녀는 국회의원이 될 것인가

그녀가 넘어야 할 벽은 너무 많았다. 자신과 동료들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고, 사회의 편견을 넘어야 했고, 상대 후보의 공세를 넘어야 했고, 유권자들의 보수적 성향을 넘어야 했다. 그녀는 그 수많은 월담을 위해 성을 팔고, 진심과 눈물을 팔고 또 팔았다. 영화의 욕망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둘 채워져 갔지만 정작 송경식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신부님(가수 남진)이나 상대방 후보들의 입을 통하거나 유세장에서 잠깐씩 언급될 뿐이다. 국회의원은 사기꾼, 도둑놈, 깡패만이 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전형적인 사기꾼의 미래 직업이고, 고도의 방중술인 ‘빗장걸기’처럼 정치를 하겠다는 그녀의 유세 발언 등이 바로 감독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진심은, 기억으로는 남지만, 혼성모방된 다른 장면들에 묻혀 버린다. 관음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진 섹스 스펙터클과 이젠 닳고 닳아버린 조폭 코미디 영화의 상황 재연 등에 묻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역시 정치를 조롱하면서 정치 상품을 파는 이 시대의 불행한 역설을 답습한다. 비약하자면, 인간적인 사회의 구현, 나쁜 정치에 대한 비판, 감동적인 인간 승리 따위란 기성 세대들의 ‘착한 강박’에 불과한 지 모른다. 또 그 ‘착한 강박’이 그대로 표출될 때 그것은 ‘또 다른 위선’으로 귀착되기 쉽다. 정말 영화 속에서 진담을 하고 싶었다면, 민주공화국이나 주권 타령을 하기 전에, 권력의 출처인 국민 혹은 자신부터 조졌어야 했다.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이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