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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된 밤,푸른새벽의
2003-03-24

‘메이저’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는 ‘노래하는 dawn’과 인디 신에서 활동하던 ‘기타치는 sorrow’가 만난 것은 지지난해 겨울 홍익대 근처의 어떤 작은 클럽에서다. 그리고 얼마 뒤, 이들은 ‘푸른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어 음반을 냈다. 발매 레이블은 ‘전통의 인디 레이블 로-파이 카바레 사운드’이다. 오! 부라더스나 볼빨간과 같은 간판스타(!)들의 인상이 강한 이 레이블에서 이름부터 얌전해 보이는 이들이 이런 ‘재미있는’ 뮤지션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언뜻 의아하지만, 이 레이블에 메리 고 라운드나 은희의 노을 같은 ‘진지한’ 뮤지션들 또한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의문은 곧 풀린다.

홍보 자료는 이들의 음악을 ‘티끌마냥 부유하는 드림 팝’이라 부르고 있다. ‘드림 팝’이라 불리는 스타일은 종종 인공적인 전자음과 어쿠스틱 악기음을 결합시킨 공간감 있는 사운드를 바탕으로, ‘천상의’(ethereal) 느낌을 지닌 여성 보컬이 그 소리들 위를 꿈처럼 떠도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런 면에서 이 홍보 카피는 대체로 맞는 듯하되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가끔씩 삽입되는 ‘전자음’과 다소 애매하게 처리한 보컬에도 불구하고 정작 음반은 작은 클럽에서 직접 음악을 듣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녹음된 보컬은 현장감과 자연스러움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현장감이 ‘녹음된’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과 맞물려서 묘한 비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스무살>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슬라이드 기타음과 <Apri>의 도입부에서 라디오 방송 위를 무심히 흐르는 변조된 보컬 또한 그 ‘현실적 비현실감’에 일조한다.

분명 어떤 이들에게 이런 음악은 심심하다. 기복없는 구성과 간소한 악기편성, 그것을 강조하는 텅 빈 사운드,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 안으로 삭이는 듯 서늘하게 읊조리는 보컬의 음색은 주의를 집중해 듣지 않는다면 한곡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Paper Doll>의 중반에 나오는 ‘격렬한’ 전기기타 소리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주한 것 같고, <푸른 자살>의 미묘한 훅도 단숨에 귀를 잡아채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애교있는 음악은 아니다. BGM(Back Ground Music: 배경음악)이 그 자체로 편안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자극을 통해 듣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이라면(그래서 BGM은 애교있는 음악이다) 이 음반은 BGM 또한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집착>에서 서먹하게 인사하다가 <Paper Doll>에서 친근함을 표시하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그 톤을 <자위>까지 이어간 뒤 <푸른 자살>에서부터 작별을 준비하듯 다시 나직이 가라앉는 이들과의 대화는 이들이 준비한 것만큼 우리 또한 준비하고 듣지 않는다면 별 소득없이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난 뒤는? 창백할 정도로 화창한 날, 길가에 쌓인 눈에 비친 그림자는 파랗게 보인다. 예민한 시각을 소유한 이들은 맑은 밤하늘이 깊은 푸른빛을 띤다고 주장한다. 이 음반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모그 너머에 있는 밤하늘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최민우/ 웹진 <weiv>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