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위기 사진가, 이별 그리고 비상
사진가인 소정은 어느날 자신이 튜불러 비전(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는다. 시야가 계속 좁혀들어가 튜브처럼 되어버리며, 언제 실명 될지 언제 나을지 알 수 없는 병이다. 시력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바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포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온 소정에게 그것은 공황일 수밖에 없다.
‘튜블러 비전-가족-미소-비행’의 네개의 장을 따라, 영화는 소정의 일상과 선택을 담담히 따라간다. 함께 미국유학을 떠나기로 했던 애인 지석에게 이별을 통고하고,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은 가족들은 지리한 일상 속에 각자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러 찾은 곳에서 비행교사와 정사를 나누고, 혼자 남은 소정은 하늘로 비상한다.
건조하게 그려지는 일상 속에서 곧 터져버릴 듯한 소정의 내면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해한 삶의 모습 그 자체다. 마지막 소정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그 삶에 함몰되지 않은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