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감독 이용민 출연 최은희
EBS 5월5일(토) 낮 12시
한국영화에서 ‘혼인’ 모티브를 지닌 작품을 추리기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고전 <춘향전>(1955)도 신분격차가 있는 커플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백년가약을 다루지 않던가. 한국영화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결합은 눈물을 쏟는 신파로 곧잘 향하곤 했다. <맹진사댁 경사>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마음씨 착한 여성이라면 부잣집 도련님과 화려하고 멋진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이 영화의 주제는 허무맹랑한 구석도 있다. <맹진사댁 경사>를 만든 이용민 감독은 어쩌면 낯선 이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덤에서 나온 신랑>이나 <목없는 미녀> 같은 영화를 제목만이라도 기억하는 이가 있지 않을까. 이용민 감독은 1960년대에 주로 토속적인 소재의 공포영화를 만들었으며 영화연출뿐 아니라 촬영까지 겸했던 인물로 한국영화사에 기록되고 있다.
딸을 가진 맹진사는 판서댁 아들을 사위로 삼으려고 한다. 판서댁 아들이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맹진사는 고심 끝에 잔꾀를 부린다. 딸 대신 몸종 이쁜이를 대신 시집보내기로 한 것. 이쁜이는 처음엔 맹진사의 뜻을 한사코 거절하다가 마지 못해 대신 혼인을 하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막상 혼인날 확인해보니 판서댁 아들은 소문과는 달리 절름발이가 아니고 외모도 잘생겼다. 첫날밤에 이쁜이는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판서댁 아들 미언은 진실함을 지닌 사람을 찾기 위해 일부러 거짓 소문을 냈음을 밝힌다. 이쁜이의 행복한 모습을 본 맹진사는 허탈한 심정이 된다.
<맹진사댁 경사>는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1956)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배우였던 김승호 등은 <맹진사댁 경사>에서 아예 배역까지 그대로이다. 두 영화는 어느 여성의 신분상승의 서사를 풀어가되, 해학과 풍자를 양념으로 곁들이면서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을 공통분모로 삼는다. 이쁜이는 착하고 예의바르며 외모도 반반한 덕에 신분이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움켜쥐게 된다. 이정도면 한국판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에선 <시집가는 날>의 조미령 대신, 최은희가 이쁜이 역으로 발탁된 점이 눈에 띈다. <성춘향>이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같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한국영화의 주연이었던 배우 최은희의 페르소나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명과 봉건적 도덕에 순응하고 묵묵히 인내하는 여성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맹진사댁 경사>엔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봉건성과 근대적 사고관 사이를 방황하면서 세심하게 ‘균열’을 내는 여성으로는 등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치매증상이 있는 노인 역의 김희갑은 유쾌한 코믹연기를 과시한다. 묻는 말마다 “아, 그게 누구더라아? 그렇고 말고. 아, 그게 뭐더라아?”라며 동문서답을 일삼으면서 당시 국내 코미디 연기의 한 전형을 예시하고 있다.
사족 하나. <맹진사댁 경사>에선 맹진사를 비롯한 양반은 매끄러운 서울말씨를 구사하는 데 반해 몸종이자 천민인 이쁜이는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한국영화에서 지역적 특색이 곧 ‘천함’의 상징이 되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김의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