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죽으면 한 세상이 사라진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풍자가 성심을 오히려 심화하는, 치열하게 너그러운 문장으로 이 시대 가장 천대받는 농민 소재에 풍만하면서도 고전적인 품격을 부여한 이문구 소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고, 천라지망 정신으로 삶의 일상을 묘파해내고 필경은 웃음과 울음의 경계를 아름답게 허무는 이문구 산문을 안다면 더욱 그렇고, 문단 선후배 일상의 피와 살을 수습, 녹청으로 유구한 문학 자체의 생애를 조각해내는 이문구 발문을 읽었다면 더욱 그렇고, 인간 이문구를 조금이나마 접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갔고, 삽시간에 세상은 황량하다.
그의 문학에 감동하지 않은 독자 없고 그의 문장을 선망하지 않은 작가 없고 그의 어린 시절을 블랙홀로 만들어버린 6·25전쟁 비극의 참혹과 경악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작가 없고 그의 신세를 지지 않은 친지-후배 없고 그가 쓴 발문을 자기 책 뒤에 달아보는 것이 작가들의 오랜 소망이었고, 오래된 사람들은 대체로 희망을 이루었다.
그를 존경하던 후배가 대통령이 되고 제자는 장관이 되고 동료작가는 문예진흥원장이 되고 나라 안이 온통 젊음의 축제에 들뜨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날을 하필 잡아 그는 갔다. 아하, 이문구, 정말 철저한 반골이구나.
반골은 단순히 정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한마디로 당연한 말은 쓸데없는 말이고 쓸데없는 말은 필경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토록 유순하고 잡다한 인간들을 정말 잡탕찌개처럼 만들듯 포용하면서도 내심 그런 생각을 철저하게 견지했던 이문구에게 그에게 정치는 ‘당연한 말=거짓말’의 잔치판이었다. 확실히 전보다는 나을 것 같다만 니 놈들도 당연한 말만 뇌까려서는 안 된다…. 그런 일갈이 들리는 듯하다.
평생토록 그를 단체일 심부름깨나 시키던 윗세대들은 망연자실했는지, 아니면 몸이 달렸는지 그 흔한 술주정 한번 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다. 평생 동안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하나가 어려운 사람 초상 챙겨주고 고약한 술주정 받아주는 거였는데, 죽어서도 주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지겨울까. 무슨무슨 협의회 그런 것들은 또 얼마나 지겨울까….
그나저나 돌아갔으니 이제 글에서도 선생님자 붙여드려야겠습니다. 재 한줌으로 변해 불구덕을 나오시는 걸 보니 정말 ‘옛날 사람’(고인)되셨습디다. 유언과 달리 장례식이 꽤 번다했지요? 산 사람 마음도 너그러이 헤아려주십사….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u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