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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같은 일상 현미경 묘사
2003-03-15

순애보(SBS 밤 11시40분)=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고 고지서를 배달하는 동사무소 직원 우인. 일에 대해서도, 다른 것에서도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우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포르노사이트를 헤매는 일이다. 우인은 주민증을 갱신하러 온 미나(김민희)에게 반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우연히 포르노사이트에서 미나와 비슷하게 생긴 ‘루비구두를 신은 아사코’를 발견하고 그 모델에 빠져든다. 아사코라는 예명을 가진 아야는 날짜변경선에서 자살할 요량으로 알래스카행 항공권을 구하기 위해 성인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본소녀다.

<정사>를 만든 이재용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으로 <순애보>는 제목처럼 멜로를 표방하고 있지만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건 아주 짧은 두 순간. 특히 두사람이 처음으로 눈이 마주치는 건 우연히 같이 탄 비행기에서 내린 마지막 장면에서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마지막 대사는 그러므로 로맨스의 시작이다. 감독은 말랑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대신 무미건조한 우인의 일상을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한다. 달콤하지 않지만 거기에서는 입안을 감도는 슬픔 같은 게 배어나온다. 15살 이상 시청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