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말로의 삶은 그의 모든 소설들보다 더 소설적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기자인 레미 코페르가 그에 대한 소설로 쓴 평전에서 한 말이다. 이는 비단 그만의 평가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러르는 신화이며, 말로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다. 앙드레 말로는 1901년 11월에 태어나서 1976년 11월까지 문학가와 모험가로서 때로는 정치가와 기회주의자로 20세기의 한 시대를 살았다.
1920년대에 말로는 인도차이나에서 반식민주의의 투사로 20대의 모험과 열정에 사로잡힌다. 프랑스 식민주의의 잔혹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계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데 앞장선다. 이러한 그의 탐험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발전하여 <왕도> <정복자> <인간의 조건>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 콩쿠르상을 받으면서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30년대에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이때의 경험으로 <희망>이라는 대서사시가 탄생한다. 40년대에는 레지스탕스 대장으로 활동하고, 47년 드골을 만나면서 맹렬한 드골주의자로 변신하여 그의 오른팔을 자처한다. 이후 말로의 정치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이제는 더이상 세계주의자 말로가 아니라 프랑스를 대변하는 민족주의자로 완벽하게 돌아선다. 그리고 1959년 문화부를 신설하여 세계 최초로 문화부 장관이 되어, 이후 10년 동안 영욕의 세월을 보낸다.
“그의 인생은 한편의 영화다.” 최근 언론들이 이창동에 대하여 쏟아낸 수사 중 하나다. 1954년에 태어나 교사, 소설가, 영화감독, 교수의 이력을 거쳐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편력에 대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1980년대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분단의 질곡과 사회의 부조리를 통찰하는 소설들을 발표하였고, 이상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90년대에 영화계로 뛰어들어 감독으로서 빛나는 성취를 일구었고, 2000년대에는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는 21세기 첫 정권인 새로운 시대에서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앙드레 말로를 굳이 끌어와 이창동을 비견하여 말하는 것은 그에 대한 화려한 수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싶음이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철학을 가진 정치인을 만나본 경험이 전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기대를 한번도 가져보질 못했다. 그만큼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이창동에 대한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앞으로 한국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라도 놓여진다면 하는 바람이 우리의 작은 소망이다.
앙드레 말로가 오늘날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드골, 호치민, 나세르 등의 뛰어난 전기를 쓴 장 라쿠튀르가 <말로, 시대와 함께한 삶>을 출판한 직후에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문화정책은 미국식의 시장체제와 소련식의 국가주의 사이의 중간노선을 추구했어요. 지방문화원은 정말로 독창적인 생각이었고, 그가 주도한 대규모 전시회는 전시회 문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어요. 한편으론 말로 정도의 인물이라면 프랑스 문화계를 진짜로 뒤흔들어놓을 수 있었는데,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는 상당한 업적을 남겼고, 제가 말로를 존경하지 않았다면 그의 전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 2월27일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에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의 취임을 환영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옮겨 싣는다. “이제 사실상 처음으로 문화예술인이 문화부 장관에 기용된 만큼 이번 인선이 지금까지의 산업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문화 본연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문화정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의 증진, 문화교류의 확대라는 문화적 관점의 과제가 문화정책의 중심이 될 때 문화산업의 발전이라는 산업적 관점의 과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은 스스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장관직을 수락한 배경에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위의 연대회의가 천명한 대승적 차원의 인식을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쩌면 감독으로서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영화계 안팎의 회의적인 시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고백처럼 21세기 한국 문화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