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고>를 보면 미국 아카데미 회원들이 어째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려놓았는지,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왜 개막작으로 초대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스타들의 화려한 춤과 신나는 노래, 탄탄한 구성과 줄거리, 쇼 비즈니스 세계의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등 관객과 평단을 매혹시킬 요소가 빠짐없이 들어 있다. 이 정도면 `뮤지컬 영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충무로의 속설을 낭설로 뒤바꿔놓을 만하다.
눈을 클로즈업하던 카메라가 눈동자 안으로 빨려들어가자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하는 구령과 함께 흥겨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주인공은 시카고 최고의 스타인 켈리 자매. 그러나 오늘은 언니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만이 무대에 올랐다. 불륜관계를 맺어온 남편과 동생을 쏘아죽이고 왔기 때문이다.
객석 뒤편에서 벨마를 선망의 눈길로 지켜보던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 스포트라이트를 약속하며 접근해온 프레드가 몸만 노린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분노의 총탄을 날린다.
록시는 감옥에서 우연히 교도소장 매트론 마마(퀸 라티파)와 벨마의 대화를 엿듣고 살아날 구멍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줄 구세주는 승소율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 그는 대중의 관심이 식은 벨마 대신 록시를 내세운 뒤 교묘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가엾은 천사'로 둔갑시킨다.
<시카고>가 스크린에 처음 옮겨진 것은 1927년. 26년 초연된 「작고 용감한 아가씨」란 제목의 연극이 무성영화 <시카고>로 만들어졌다가 42년에는 진저 로저스 주연의 「록시 하트」가 탄생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75년부터 공연됐다.
<시카고>를 60년 만에 다시 영화화하겠다고 나선 이는 갓 서른을 넘긴 롭 마셜. 연극계에서는 여러 차례 토니상과 올리버상 후보에 오른 재주꾼이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실제와 상상, 현재와 과거 등의 화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창살 앞에 서 있는 재소자들을 실루엣으로 비추는 등 화려한 기교를 구사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기자들을 빌리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로 만들어 인형극으로 꾸민 재치도 놀랍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비록 르네 젤위거에 밀리는 역할이지만 무대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만큼은 단연 압도적이다. 르네 젤위거와 리처드 기어는 배역에 딱 맞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고 록시의 순진한 남편 존 레일리와 교도소장 역의 퀸 라티파도 호연으로 이들을 거들었다.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영화들은 이미 관객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거나 짜임새가 비교적 단순해 무대장치와 춤과 노래 등 비주얼에 치중하는 것이 보통. 그러나 <카고> 스토리라인은 법정 스릴러나 풍자 드라마를 뺨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막이 오르자마자 캐서린 제타 존스가 포효하듯 노래하는 `올 댓 재즈(All That Jazz)', 캐서린과 르네 젤위거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이 무브 온(I Move on)',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돌아가며 부르는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등의 박진감넘치는 선율은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귓전에 맴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27일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장기상영되고 있다. 국내 개봉은 28일. 상영시간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