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엔 너무 아픈, 잊기엔 너무 같은
내가 대학생에서 회사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악명 높은 선배한테 별것도 아닌 일로 된통 혼이 난 뒤 혼자 씩씩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가 받는 월급에는 상사한테 욕먹는 값도 들어 있다. 그게 회사생활이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른 지금, 지난 2월 말부터 EBS에서 방영되는 30부작 <샐러리맨 딜버트>(월∼금 밤 9시)를 보면서 당시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회사원인 나는, 주인공 딜버트의 모습을 보며 그의 월급이 얼마인지 생각해본다.
딜버트는 엔지니어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하이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아이큐가 170이나 되는 천재에다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모범직원이다. 하지만 그의 진지함과 진득함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머리털이 귀 뒤로 뿔처럼 솟아오른 상사를 비롯해 사사건건 시비걸기 좋아하는 여직원 앨리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냉소적인 왈리, 무능하고 심약한 인턴사원 에쇽은 딜버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가진 문제의식은 딴짓거리만 일삼는 동료와 책임회피에 급급한 상사에 의해 무시된다. 결국에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책임만 떠안게 되기 일쑤다. 그의 친구인 말하는 천재 개 독버트는 한술 더 뜬다. 안경을 쓰고 헬기를 타고 다니는 독버트는 잔머리의 대가이자 인간을 경멸하는 개. 딜버트를 도와주기는커녕 독설을 퍼붓고 곤경에 빠뜨린다. 그가 딜버트에게 해주는 충고는 이렇다.
“어떤 일을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직업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 강아지의 이기적이고 냉정한 목소리가 조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샐러리맨 딜버트>는 실적 만능주의 사회에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다.
스콧 애덤스가 1989년 이 만화를 신문에 연재했을 때 미국사회는 이른바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인들이 거센 풍파에 휘말리고 있을 때였다. 그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17년간 일하다가 대기업에서 실직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딜버트는 바쁘다. 감사패를 받고 싶어 불우이웃돕기 모금대회를 개최한 부장도 도와야 하고, 세상의 모든 공휴일을 없애고 대신 독버트 데이를 만들겠다고 상원회의에 진출하는 독버트의 음모도 저지해야 한다.
회사생활을 배경으로 온갖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까발리는 <샐러리맨 딜버트>는 솔직히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딜버트의 진지함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첫 번째고, 둘째로 작품 속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사실은 우리 사회의 복사판이며,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가 바로 딜버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회사를 운영하는 간부인 ‘캣버트’가 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금만 비겁하면 세상이 즐거운 게 아니냐고 말이다.
말이야 맞을지 모른다. 그런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글쎄, 하지만 그렇게 악랄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딜버트처럼 조금은 손해보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집에 가면 딜버트가 더 편하게 누워 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밤 9시에 편성됐다는 점이다. 15살 이상 시청이 가능하다는 고지도 강조된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관을 깨고 과감히 밤 9시라는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EBS의 시도를 높이 사고 싶다. 무겁고 뒤숭숭하기만 한 요즘 보다는 그래도 이게 좀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