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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10권,제5화 종결

기사와 파티마, 피에 젖은 파트너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언제쯤 그 긴 이야기가 끝나는지, 다만 그것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러나 부질없는 희망인가? 수만년에 걸친 별과 기사와 요정과 기계괴물의 이야기를 불과 몇 십년 동안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가 겨우겨우 10권을 냈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별다른 해설도 붙지 않고 만화로만 260쪽이 넘는 최대 분량의 권이다. 이것으로 9권에서 시작된 제5화 <더 시발리스>(the Chivalries)가 종결되었다. 오랜 다섯별 이야기 중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고 유머 넘치는 테마, 기사와 파티마의 발라드가 빛나는 화음으로 어우러졌다.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제5화는 그야말로 ‘기사와 파티마’의 이야기다. 중심 줄거리는 성단력 2995년에서부터 3010년 마법제국 황제 보스 야스포트의 플로트 템플 내습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앞뒤 수만년의 이야기들이 사이사이에 들어가 기사와 파티마에 얽힌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또 많은 물음을 만들어낸다.

억눌린 고결함, 비극적 운명

시발리스(기사)는 40억 이상의 생명을 성단 전쟁 때 앗아가버린 초제국의 전투 병기로 그야말로 저주받은 발광(發狂)의 피였다. 이후 그 피는 엷어져갔지만, 최강 레벨의 시발리스로 2천년 이상 동결되어 있던 스바스가 깨어나 초제국 황제의 소유가 될 순간, 그 옛날 사라졌던 불꽃의 여황제가 나타나 그에게 자유를 준다. 그는 초대 검성(劍聖)이 되어 새로운 기사의 시대를 열어간다. 제5화는 그로부터 수천년 뒤, 또 많은 기사와 파티마들이 또 다른 운명의 실타래 속에서 웃음짓고, 싸우고, 죽어가는 이야기다. 트란의 대통령이기도 한 보드 뷰라드는 뒤늦게 기사의 피가 깨어나는 바람에 겪게 된 어린 시절의 시련을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그와 어린 ‘짱구’ 메가엘라의 만남과 훗날의 재회는 더욱 풋풋한 인간성을 드러낸다. 성단 최초의 파티마 중 하나이며 검성 비잔틴과 함께했던 인터시티가 하르펠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숲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는다. 성단력 2997년, 무한한 생명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파티마가 처음으로 자연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사와 파티마는 그 고결한 외모와 막강한 힘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의 소유자들이다. 주인없는 파티마는 아무에게나 농락당하고 폭행당하면서도 그것에 저항하지 못한다. 기사들은 사소한 불의를 보더라도 그가 일반인이면 기사의 힘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기사의 힘을 가진 소녀 크리스틴은 상급생의 놀림과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그를 죽여버리곤 근육을 약으로 파괴당하고 평생 침대에 누워지내야 할 신세가 된다. 많은 파티마들이 기사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전투에서 서서히 파괴되고, 약물에 물들고, 길거리에 버려져 부랑자들의 노리개가 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슬픈 이야기, ‘죽음의 여신’이라 불리며 자학의 방랑을 하는 파티마 바아샤와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소년 욘의 비극적 운명이 펼쳐진다. 정말로 강하지 않았다면, 기사의 피나 파티마의 생명 같은 건 애초에 가지지 않고 만났다면 하는 많은 회한의 목소리가 메아리진다.

나가노 마모루의 펜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 꼼꼼한 매력이 돋보이는 명장면의 연속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표정의 개그 묘사가 색다른 감칠맛을 준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

그렇지만 그 반대편에 넘치는 광휘, 위대한 기사들이 내뿜는 매력의 광채는 눈부시다. 검성 더글라스 카이엔은 기나긴 방탕의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를 ‘네들 시발리스’라 칭하고 기사단 총단장이 되었다. 비운의 소녀 기사 크리스틴 V는 하이랜더로 새로운 운명을 찾는다. 악역이며 다소 비열한 외모를 가졌지만 왠지 미워하기 어려운 흑기사 데코스 와이즈멜은 그에 걸맞은 파티마를 얻는다. 풋풋한 소녀 마마조아 유조타, 까불대는 천방지축 소년 쟈코 등 피어오르는 봄꽃의 기사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나가노 마모루의 펜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 전편에 파티마 디자인 등에 잠시 선보였던 3D그래픽은 다행히도 접어주었고, 꼼꼼한 펜선의 매력이 돋보이는 명장면을 연이어 선보인다. 특히 이상망측한 표정의 개그 묘사가 색다른 감칠맛을 준다. 그래서인지 학원소녀만화의 안경잽이 여학생 캐릭터인 마마조아, 겉으로는 내숭이지만 무시무시한 엄마 킥의 소유자인 이마라, 성단 최강의 기사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건강한 할머니’로 여생을 보내는 에나 다이, 우아한 외모와 고매한 인품을 가졌지만 사투리를 마구 터뜨리는 스즈카 아씨 등 아이러니한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감상과 웃음의 에피소드들은 아마도 다음의 큰 전쟁을 위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으로 보인다. 플로트 템플을 들이닥쳤다 ‘우선은’ 물러간 보스 야스포트, 그리고 빠르게 자라고 있는 하스하 왕궁의 쌍둥이 남매 데프레와 마그달이 보여줄 대전(大戰)을 기다리며 이제 우리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으로 들어가자. 그전에 우리, 에필로그의 소프와 라키시스처럼 햇빛 따뜻한 나무 밑에 누워 우리가 사랑했던 기사와 파티마들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뭔가 잊어버린 건 없나? 그래 비운의 용병, 브래포드도 등장한다. 인디언 복장은 벗어던지고 일본 무사의 행색으로. 이번엔 꽤 마음에 드는 일거리를 얻은 듯하다.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방랑하고….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운영중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