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생활>MBC 밤 9시 뉴스데스크
강원도 눈밭에서 설피를 신고 눈 소식을 전하고, 청계천 헌 책방에서 새봄의 기운을 전하는 일기예보. 얼마나 추운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 한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조깅도 마다않는 용감무쌍한 일기예보. 여기 <사랑은 비를 타고>를 부르며 비 소식을 전하는 이정재의 명랑+깜찍함을 충분히 넘어서고도 남을 일기예보 프로그램이 있다. 가 끝날 즈음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의 날씨를 돌아보고, 내일의 날씨를 점쳐주는 <날씨와 생활>이다.
1999년 5월에 시작해 이제 3년 하고도 10개월째에 접어든 이 프로그램의 원칙은 철저하다. 바로 “날씨가 펼쳐지는 현장에서 직접 전해주는 일기예보”를 지향한다는 것. 더우면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며, 추우면 얼어붙은 입을 녹여가며 날씨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퍼런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전해주는 일기예보에 익숙했던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라는 비웃음도 많이 샀지만 이제 이 무모한 프로그램만을 골라 보는 시청자들이 생겼을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월드컵 이후 뉴스시간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평균 시청률은 18∼20%대. 뒤이어 방송되는 드라마의 덕을 많이 봤다고 하더라도 꽤 괜찮은 성적표다. 이러한 꾸준함으로 일기예보 프로그램으로서는 전무후무하게 인터넷 팬카페까지 생겼을 정도. 그야말로 일기예보계의 ‘기상이변’이라 할 만하다.
일기예보계가 배출한 스타 김동완 기상캐스터의 요란한 후배들인 이들은 스스로를 2세대라고 칭한다. 때로는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간명하게 날씨를 전하는 것이 1세대의 방식이라면, 유용한 정보라도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자신들은 그 다음 세대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쇼맨십과 전문성이 결합된 기상캐스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한다. 너무 재미 위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이들의 고집은 확고하다. 온갖 기상용어와 숫자만 내뱉어놓고서 휭 하니 사라지는 일기예보를 보고 나면 매일 매일의 날씨를 ‘몸’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 삶의 문제들과 맞닿아 있는 날씨를 재미있게 포장해 전달해야 생생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의 현장이 곧 삶의 현장”이라는 철학으로 일한다는 <날씨와 생활> 제작팀의 속깊은 변을 듣고 보면, 일기예보는 단순한 날씨 정보를 전해줄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색해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들의 대상이 되지 못할 장소란 없어 보인다. 눈썰매장이나 탑골공원은 기본이고, 공포체험 전시관이나 익사현장까지. 한번은 대한민국의 첫봄을 찾아 무작정 제주도를 몇 바퀴나 헤매기도 했다. 아직 겨울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제주도에서 그들이 봄꽃을 찾아낸 곳은 서귀포 근처의 동굴 속. 하루의 일기예보를 위해 지출하는 노동치고는 과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날씨는 숫자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라는 고집을 지키기 위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날씨만큼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는 일도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 될 일이다.
여기서 잠깐, <날씨와 생활>이 전하는 올 봄의 날씨. “초봄에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겠고, 황사는 4월에 잦겠습니다. 강수량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 봄 심한 가뭄은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벌써부터 여름이 걱정되는지 한마디 덧붙인다. “여름이면 항상 수해가 옵니다. 그중 많은 부분이 인재예요. 지난해 부산지역 장애인시설물에 산사태가 덮친 것도 그렇고…. 건축, 설계하시는 분들이 제발 조금만 더 신경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절을 훌쩍 앞서가는 이 유난스런 직업의식을 누가 말리랴!김형진/ 자유기고가 ofotherspace@hotmail.com
기상캐스터 조문기 기자가 말하는 ‘날씨’와 ‘생활’같은 날씨, 다른 생활?
언젠가 봄철에 진해 홍합 양식장에 간 적이 있어요. 봄은 독성 플랑크톤이 퍼지는 시기거든요. 그곳에서 수확시기를 놓친 어민들이 울면서 홍합을 죄다 끌어올려 폐기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보통 ‘봄’ 하면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 고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지지난해 겨울에는 신림7동을 찾아갔었어요. 새벽부터 눈이 제법 내린 날이었는데 길이 온통 얼어붙었더라구요. 달동네라 눈이 조금만 와도 생필품 공급이 안 되고, 가스도 안 나오고. 눈길에 미끄러지신 분들은 그 계단을 내려갈 엄두가 안 나 병원도 못 가시더라구요. 안 그래도 힘든 삶인데…. 부유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날씨를 겪지만 참 다른 이웃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