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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거듭날까?
이영진 2003-03-12

올해 예산 34억여원 책정,내실 키우기가 급선무

34억1063만8천원. 놀라지 마시라. 올해 6월15일께 열리기로 되어 있는 대종상영화제가 필요로 하는 총사업비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밝힌 영화단체사업지원 심사결과 공표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이는 지난해 대종상영화제에 들어갔던 돈의 10배가 넘는 액수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쓴 돈이 33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예산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대종상영화제를 꾸려왔던 신우철 한국영화인협회(이하 영협) 이사장은 “지난해에는 시상식만 열었는데 올해는 명실상부한 영화제로 거듭나겠다”며 “접촉 중이라 확언할 순 없지만, 북한 영화인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포함하여 3월 중순 이후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종상영화제를 준비하는 쪽에선 35억원에 달하는 행사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현재까지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전폭적인 도움을 얻어내기란 어려워 보인다. 3월3일 발표된 영화단체사업지원 심사결과에 따르면, 영진위가 대종상영화제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금액은 1억4천만원에 불과하다. 신청단체인 영협은 총사업비 중 11억6910만원 정도를 요청했지만, 영진위는 이중 10% 이상을 주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 영진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마저도 영진위 내부에서 다시 한번 모니터를 거친 뒤에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된 이후에야 집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종상영화제쪽에서도 문화관광부와 영진위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는 반응이다. 신우철 이사장은 “영진위쪽에서 시상식만 하라고 하는데, 1주일 동안 영화축제 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잡은 만큼 큰 기대 않고 자체적으로 스폰서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쪽 지원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종상영화제는 재원 마련을 위해 한때 서울시와 협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쪽과 명칭 문제로 논의하다 틀어졌고, 현재는 기업들의 협찬을 뒷받침으로 별도 법인을 꾸리되 영화뿐 아니라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문화예술계 전반을 아우르는 인사들과 함께 구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한다.

올해 열리는 대종상영화제는 40회를 맞는다. 아직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진 못한 상태. 영화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신우철 이사장은 “더이상 누가 주최하느냐는 문제로 영화인들과 패권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다”며 “모두들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영화제가 열리기까지는 3개월. 늦지 않았으니, 한번 자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대종상영화제가 영화인들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가 과연 규모가 작은 영화제여서인가, 라고.

아마도 영화인들은 3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규모 영화제를 또 하나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영화제는 이미 배부를만큼 열리고 있다. 대종상이 어둠 속을 헤매는 동안, 지난해엔 MBC 영화상이 신설됐다. 시상행사 하나 더 생기는 일이 나쁘진 않다해도, 영화인 스스로 만든 전통의 영화상이 유명무실해졌고, 영화계 밖의 언론 방송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은 아무래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실추됐던 대종상영화제의 오명을 씻고 새 출발하려면, 올해 영화단체지원사업 예심 과정에서 “대종상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