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적 사운드 그대로
매시브 어택이 새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백 번째 창>(100th Window). 지난 앨범 <Mezzanine>을 내놓은 지 5년 만이다. 이들처럼 과작인 밴드가 또 있을까. <Mezzanine> 이후 멤버 교체를 겪기도 했고 밴드 내부에 여러 문제가 있었던 탓도 있긴 하지만, 정작 이들이 그토록 과작인 이유는 더 근본적인 데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들의 반복적인 리듬을 기본으로 한 전자음악은 언뜻 만들기가 쉬워 보이기지만 실은 굉장한 집중력과 불굴의 실험정신을 요구하는 음악이다. 이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미묘한 노이즈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계속하여 그것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사람 지치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음악은 판 한장 만들면 지쳐서 일 년은 귀와 몸과 마음을 쉬어야 한다. 더군다나 지난 앨범 <Mezzanine>의 사운드는 얼마나 세기말적이었나! 영국 브리스톨에서 탄생한 세기말적 사운드의 이른바 ‘트립합’이라는 장르를 이끄는 원조답게 전작에서 들려준 이들의 사운드는 황량한 마음의 바다를 헤매는 검은 잉크의 노래처럼 들렸다.
새 앨범을 들어보니, 세기말이 지났지만 이들의 사운드는 여전히, 아니 더욱더 세기말적이다. 지난 앨범도 사이키델릭했지만 이번 앨범은 그 농도가 훨씬 더 진해졌다. 밴드를 지탱하던 흑인 ‘머쉬룸’과 ‘대디 G’가 나가고 ‘3D’라는 별명을 지닌 로버트 델 나쟈가 혼자 밴드를 이끌면서 만든 이번 앨범의 특징은, 리듬은 더욱 간결해졌고 병풍처럼 뒤를 둘러치는 성격이 강해진 반면 앰비언트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노이즈들이 좀더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운드에 효과를 내주는 수많은 이펙터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딜레이’ 이다. 음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도록 해주는 이 이펙터는 테크노 음악에서는 하나의 악기나 다름없다. 매시브 어택의 딜레이 사운드는 모든 앰비언트 노이즈들이 리듬의 영역에서도 기능하도록 만들어준다. 이와 같은 기법을 매시브 어택만큼 섬세하게 쓰기는 힘들다.
그간의 앨범에서 이들의 세기말적인 사운드가 팬들에게 그토록 아름답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반복적인 화성을 바탕에 두고 환상적인 멜로디를 노래하는 객원 여성 보컬리스트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앨범에서는 과거 콕토 트윈즈에서 활약하던 엘리자베스 프레이저가 이 세기말적 사운드 위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덧입혀주었는데, 이번에는 그 역할을 시네드 오코너가 하고 있다. 열정 가득하면서도 성스러운 아일랜드의 피를 지닌 그녀의 목소리를 세곡에서 들을 수 있다. 자신의 기분을 있는 대로 발산하지 않고 매시브 어택 사운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보컬이다. 서너개의 근음만을 바탕으로 끝없이 돌아가는 중심 리프 위에 얹혀진 그녀의 목소리는 이들의 세기말적 음악에 중세적인 성스러움을 가미해준다. 이런 특징은 예전 앨범에 참여했던 여성 보컬리스트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데, 어떻게 보면 매시브 어택의 매력은 바로 그 점에 있다. 세기말적인 노이즈와 균형잡힌 성가풍의 멜로디 사이에 신비로운 조화가 생기는 것이다.
매시브 어택 특유의 이와 같은 조화는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트립합 사운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급진성을 띠고 있다. 한 방향으로 계속 전진하는 진지한 모습을 유지하는 흔치 않은 메이저급 밴드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