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초대박 열풍이 2003년 충무로의 봄을 뜨겁게 열어젖혔다. 혹자는 ‘또 코미디야’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한국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고 흥행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온 배우 조재현의 칭찬은 마음의 울림으로 잦아들었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김하늘의 연기는 뛰어났고, 권상우는 자신의 캐릭터 그대로 영화에 스며들었다. 김하늘이 투수라면 권상우는 포수다. 김하늘이 어떤 공을 던져도 권상우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그래서 두 사람의 연기호흡은 환상적이었고,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감독의 연출은 신인답지 않게 무서운 내공이 엿보였다. 예사로운 감독이 아니다….” 그러면서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사실 내가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온 것은 이 영화보다 감독 김경형에 대한 남다른 애증의 시선 때문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 감독으로서의 자기 이름를 세상에 내비쳤다. 그를 아끼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기꺼이 축하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을 것이다. 또한 그를 잘 모르는 또 다른 대다수는 화려한 감독 데뷔식을 막 치른 김경형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소수의 그 누군가는 기쁨보다는 인간 김경형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슴속에 고여 있는 눈물을 새삼 삭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감독이 되기 위해 투쟁(?)하며 보낸 세월은 줄잡아도 10년이 훨씬 넘을 것이다. 그 사이에 그는 결혼도 했고 가족도 꾸렸다. 감독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감독하는 것이 무슨 벼슬이냐”는 질책을 누군가로부터 듣지 않아도 자신 스스로 끝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감독의 길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이 자리에서 김경형의 인생을 평하는 것은 자격도 없고 관심사도 아니다. 다만 감독 이전에 인간 김경형으로서의 ‘삶’을 엿보고 싶은 것이다. 제작자로서 많은 감독들의 삶을 엿보지 않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그들의 고통스런 삶과 함께 부대껴야 한다.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벼슬’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감독이 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쉽다.” 최근 몇년간 세대교체 바람이 급격하게 불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데뷔하는 감독들이 많이 배출되며 나온 말이다. 그러나 감독 개개인에게 물어보라. 누구도 이 말에 섣불리 동의하지 않을 거다.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면, 수년간 충무로에서 고단한 연출부 생활을 겪지 않고도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지 감독되기가 쉬어진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감독의 길을 자기의 삶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오늘 하루가 너무 고달프고, 내일의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되어서도 사정은 별로 나아질 게 없다. 사회적으로는 집도 절도 없는 신용불량자에다가 언제 작품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작가로서의 나의 영혼을 팔아버리고, 차라리 내 재능을 누군가에게 싼값으로 팔 수만 있다면 하고 희망한다. 감독으로 산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구차하기 때문이다.
김경형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글로나마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도 그의 삶을 계속 엿보고 싶다. 그리고 감독의 길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의 모든 감독님들 힘내십시오!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