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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인의 영화관람석 <8마일>
2003-02-25

“너희가 그래피티(낙서미술), 브레이크 댄스, 랩에 대해 알아”라고 묻는다면 “그래, 힙합의 3 요소다”외에는 할 말이 없다. 이것조차 논리로 이해하는 것일 뿐 아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힙합의 비트와 랩을 흉내낼 뿐 반항다운 반항은 커녕 겉만 흉내내는 한국의 좀팽이같은 래퍼들을 보면, 차라리 모르고 싶다. 그래서 (커티스 핸슨 감독)은 백인 지역과 흑인 지역을 가로지르는 디트로이트의 8마일 로드만큼 경계에 서있는 영화였다. 내가 지들을 이해해야 하나, 지들이 나를 이해해야 하나라는 복잡한 심사가 얽힌 영화였다.

래퍼 에미넴(내가 지를 왜 알아야 해)의 과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은 예쁜 백인이면서도 울퉁불퉁한 흑인에 가까운 지미(에미넴)의 랩 분투기다. 엄마(킴 베신저)는 지미의 학교 동창과 동거하는 섹스 마니아이자 빙고 마니아다. 어린 여동생 릴리는 지미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장식이며, 월세로 살고 있는 트레일러 집은 지미의 환경을 보여주는 장식이다. 여기에 사랑과 배반이 없을 수 없다. 모델 지망생 알렉스(브리트니 머피)는 지미에게 반하지만 윙크라 불리는 삼류 에이젠시에게도 좀 그런다. 게다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엄마를 보며 지미는 데모 테이프 녹음비를 벌기 위해 야근까지 할 정도로 착실한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렇게 맹숭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그는 다시 랩 배틀에 참가한다. 그것은 45초 동안 상대를 향하여 온갖 모욕과 저주를 퍼부는 랩 전투다. 양아치들이 가득 들어찬 창고에서 벌어지는 그 광경은 살벌하고 장엄하다. 그 광경은 정말 진정한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떤 정치 재판의 고발보다도 더 살벌하고, 어떤 종교 집회의 관용보다도 더 관용스러운 이 장면은 랩 정신의 엑기스이며 흑인 사회의 다의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 의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승자가 된 지미가 랩 배틀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기로 하고 야근을 위해 공장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에 있다. 이 영화의 카메라나 편집이야 심리에 따라 약간 흔들리고 촘촘하게 편집된 것에 불과하지만, 뒷골목 장면만큼은 대단하다. 그 아우라 속에서, 흑인 친구들과의 우정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그는 질퍽거리는 하위 문화에 빠지지 않고, 또 상술에 이용되는 흥행 문화로 바로 달려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균형감’ 따위로 말할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감자’인 세상을 향한 진정한 래퍼의 태도이기도 했다. 미국 사회의 왕따였던 유대인들은 다인종 미국 문화를 통합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었다. 야비한 꼴값이었다. 반면 ‘미국이 만든 유일한 문화’는 뒷골목 흑인들이 만든 힙합이다. 그래서 은 이 꼴값 혹은 역설의 뜨거움이다.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이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