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감독 없어서 십수년 영화 안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야심적인 캐릭터”는 옆집 고삐리와 바람나는 30대 아내 은호정이나 남편의 애인인 20대의 김연 보다도, 60살의 시어머니 홍병한 여사다. 알콜중독으로 골병든 남편과 지난 15년간 잠자리 한번 없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며 삶에 희열을 느끼는 인물. 문소리·황정민 등 젊은 배우와 함께 ‘온가족이 바람나는’ 이 대담하고 뻔뻔스런 가족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역할로, 윤여정(54)씨가 스크린에 복귀한다. 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작 <죽어도 좋을 경험>(88) 이후 십수년 만인 셈. 지난주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동대문의 한 캬바레에 예의 그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영 감독과 명자
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충녀>와 텔레비전 <장희빈>에 잇달아 출연할 때 윤씨는 ‘한국의 팜므파탈’이라 불렸었다. 어느 작곡가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당한 뒤 주인집의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소유욕에 미쳐 남자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는 명자, 윤씨의 나이 불과 23살때였다. “김기영 감독, 되게 집요해요. 당시 최무룡씨가 날 예뻐해서 고영남 감독에게 데려가 영화를 찍고 있었어. 그때 김감독이 자꾸 오더니 그때까지 찍었던 비용까지 다 물어줬다니까. 점점 사슬에 묶였지.” 계약조건에 몇달동안 하루에 1~2시간씩 감독과 만나는 게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이야기하며 매일 보러다니던 영화가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수업”이었다.
김감독이 리얼리즘 경향에서 인간, 특히 여성의 내면세계를 ‘해부’하는 영화로 옮겨갈 때, 윤씨는 김감독의 ‘명자’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20대초반의 나팔 청바지 펄럭거리며 발랄한 이미지였던 윤씨에게서 김감독은 “청승스러움”을 미리 보았고, “내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는 배우”라며 아꼈다. “김감독처럼 대단한 사람이랑 처음 영화를 하고나니 다른 사람이랑 못하겠더라고. 그 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임상수 감독과 병한
그랬던 윤씨가 병한역을 맡은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50대이상 배우에게 흔히 요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다른 역 하는게 가장 좋아. 이것도 맨날 눈물지으며 쌀 씻는 역이면 안했어요.”
“원래 내가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우. 감독이 거짓말 했으면 그때 안한다고 했을꺼야. 영화촬영이란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데다 감독이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 내가 너무 다르지 않을까 겁도 났지. 근데 걱정하는 내게 임상수 감독이 ‘연기는 해석 아닌가요’ 하더라고. 그래, 배우는 해석자지. 또 물었지. 근데 시나리오에서 왜 애는 느닷없이 죽이우. 임감독이 ‘우리모두 느닷없이 죽지않나요’했어요. 그래, 우린 참 느닷없이 죽지.”
50대의 나이가 되었으면 둥글둥글도 해지련만 윤씨는 싫은 사람에게 좋다고, 연기 못하는 사람에게 잘한다고 말할 줄 모르는, 대신 자신이 납득하면 몇배의 정열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김기영 감독이 사람연구를 참 많이 한 사람이었다우, 근데 임감독을 보고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난 나보다 못한 사람이랑 작업은 싫지만, 아 저사람이 나보다 낫구나 싶으면 납작 고개 숙여요.” 이날 촬영을 위해선 생전 처음 며칠간 사교댄스 하드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90년대 윤씨가 도시적이며 깐깐한 어머니, 특히 억센 운명을 담배 연기 한모금으로 날려버리는 여인을 연기할 때, 비록 작은 텔레비전 화면일지라도 사람들은 매순간 자신을 불사르는 듯한 그를 느꼈었다. 여성들이 볼 때 정말 통쾌함이 느껴지는”(임감독) 영화에서 윤씨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이 특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명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