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외 29인 지음 박맹호 고희 기념집-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
마치 동공이 영혼의 황폐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뼈만 남은, 그러나 뼈보다 견고한 예술의 형식(시인 최승호-조각가 자코메티), 음악의 황홀경을 육체-감각의 황홀경으로, 그러나 다시 육체보다 명징한 예술의, 육체와 다른 생애(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소설가 함정임), 죽음의 사건과 본질을 매개로 한 대중문화 신화 뒤집기(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소설가 김미진), 건축언어와 문학언어 사이 치열한, 상상력 풍부한 교호를 통한 예술 유토피아의 공간-가시화(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시인 김혜순), 일상(의 결과 범위)을 어느 정도 확대심화하면 예술과 혁명은 등식을 이룰 수 있는가(지하철 낙서 화가 키스 헤링-시인 디자이너 박상순), ‘코스모스=키오스’를 품은 여체를 형상화하는 페미니즘 넘어 페미니즘(화가 프리다 칼로-시인 김승희), 가공할 무의식의 멀쩡함(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루통-불문학자 송진석), ‘양변기=자신’ 속 ‘존재=죽음’의 놀이를 응시하는 예술가의 시선(조각가 마르셀 뒤상-시인 이수명), 삶은 둘러싸는 검은, 편안한, 아름다운 ‘죽음=모성’의 테크놀로지(사진작가 만 레이-소설가 원재길), 가장 은밀한 내면과 가장 광활한 세계의 중첩(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영화학자 김성태), ‘절대=진리’의 확실성 속으로, 그렇게 ‘문학=생애’의 응축성 속으로, 그렇게 드러나는 진리의 복잡성 혹은 불가해성(시인 랭보-평론가 박철화), 사유의 공포와 공포의 매력(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문학평론가 박성창), 현대라는 거대 괴기를 총체화하는 일(영화감독 프리츠 랑-영화평론가 남완석), 존재의 저주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 응집의 극단으로써 ‘서정=거울’화(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독문학자 전영애), 노동이 예술을 극복하는 순간(화가 제백석-화가 김병종), ‘정치=혁명=장님’의 자살(시인 마야코프스키-시인 이장욱), 세상을 바꾸는 미술, 북 디자인(북 디자이너 시에슬레비츠-미술평론가 정진국), 단 30초 동안, 갓난아이 탄생 첫 울음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헐떡거림까지 삶을 압축 포괄하는 예술의 죽음, 혹은 ‘예술=죽음’….
앞으로도 11명의 대상과 집필자가 남았지만, 이만하면 족하다. 아방가르드는 죽음의 무의미에 무의미로서 맞서려는 노력이지만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는 충분히 의미있다.
민음사 대표 박맹호는 우리나라에 독특한 ‘유명 문인’ 베스트셀러 문화를 20년 넘게 주도했고 단행본 출판사 아성을 구축했다. 20년 전, 여종업원 한명이 고깃점마다 챙겨 살짝짝 데쳐주던 샤브샤브를 그와 먹던 때가 좋았다.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