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고, 미래는 미래다. 현재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싱글즈> 등 3편을 제작 중이고 <조선의 주먹> <천군> <사막전사> <역도산> <범죄의 재구성>(가제) 등 대여섯편에 대한 캐스팅과 펀딩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밑에서 30편 정도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는 싸이더스로서는 이른 시일 안에 뭔가 뾰족한 방책을 내와야 하는 형편이다. “영화만 잘 만들면 된다”는 원론적인 수준을 넘어 당장 자금을 확보하고 배급선을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싸이더스가 CJS의 깃발 아래 설 가능성은 없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로또복권조차 산 적이 없다는 그는 어떻게 가문 논에 물을 대려는 것일까.
-현재 플레너스와의 관계는 어떻게 돼 있나.
=플레너스가 우리 주식 16.39%를 갖고 있다. 상법상으로는 계열사가 아닌 것으로 안다.
-플레너스라는 큰 배에서 내려 구명보트를 탄 셈이다.
=그렇게 한 것은 내 선택이기도 하다. 옛날에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합병하기 전, 우리에게 합병하자고 했을 때 내가 싫다고 했거든. 그런 체제는 나와 안 맞는 것 같았다.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시네마서비스는 플레너스 안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어쨌건, 시네마서비스는 하나의 사업부다. 성적이 좋을 때야 괜찮겠지만, 수익이 나빠지면 달라질 것이다. 숫자에 묶여서 영화를 하는 게 싫었다.
-혹시라도 플레너스, 즉 시네마서비스와 함께 다시 일을 벌일 가능성은 있나.
=모르겠다. 그것에 관해서 아직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CJ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나.
=현재 퍼스트룩 옵션 계약이 맺어져 있는 상태다. 우리쪽에서 개발되는 영화를 그쪽에 먼저 보여주고 거기서 투자·배급하겠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쪽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플레너스와의 문제를 정리하느라 CJ가 신규 투자를 안 하고 있다. 그래서 좀 모호하다.
-충무로의 돈가뭄은 여전한가.
=최소한 1년은 갈 것 같다. 쇼박스나 KM컬쳐 등이 있긴 하지만, CJS를 제외하면 큰 자금원이 없는 셈이다.
-프로젝트를 줄줄이 늘어놓고 있는 입장에서 걱정되겠다.
=일단 <싱글즈>를 유니코리아에서 펀딩받아 진행하고 있고, 다음 작품을 누구에게서 얼마만큼 받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시나리오만 좋으면 CJS에서도 투자하지 않을까.
-그쪽 돈도 받겠다는 얘기인가.
=내가 배급하나. 돈을 가릴 이유가 뭐 있겠나.
-현재 싸이더스의 재정상태는.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럭저럭 그냥 끌고 갈 수는 있다. 현금 흐름이 나쁜 거지, 자산은 많이 있다. 여러 작품에 얼마씩 묶여 있다. 감독, 스탭과의 계약, 개발 중인 시나리오, 이런 데 돈이 잠겨 있으니 자산은 꽤 되는 셈이다.
-1999년의 SUM 같은 제작사 연합에 관한 가상 시나리오가 심심치 않게 얘기된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웃음)
-얼마 전 사석에서 몇개의 영향력 있는 제작사를 확보하고, 자금원을 붙여 지주회사 형태로 묶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음…. 지금은 내가 그런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결국 지금은 옛날 우노필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아니냐. 그러면 이 안에서 영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승재 대표의 사무실에는 존 보이트와 더스틴 호프먼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드나잇 카우보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 두 남자의 서글픈 이야기는 그가 꼽는 ‘내 인생의 영화’이기도 하다. 싸이더스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이 영화에 대한 글에서 그는 “나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지글지글한 영화를 좋아한다… 좋은 영화냐 아니냐는 그 영화가 삶의 일면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냈느냐에 달려 있다… 식빵을 잘랐을 때 보여지는 다양한 단면처럼 삶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라고 자신의 영화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의 작품을 통해서 드러난 바 있다. 삶의 모습을 드러냈던 이 영화들은 흥행에도 얼마간 성공했으니, 그의 길은 올바른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그의 영화관은 강력히 도전받고 있다. 얼마 전 그는 술자리에서 “해볼 때까지 해보고 안 되면 영화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코미디영화가 줄줄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푸념하던 중 튀어나온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그게 진짜 영화를 그만두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정정했다. “시장이 계속 이렇게 간다면, 그리고 내가 이 시장에 맞는 물건을 댈 재주가 없는데, 기존의 커리어까지 망쳐가며 영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지금 그는 자신의 영화관과 변화하는 관객의 기호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하는 또 다른 과제를 떠안고 있다.
-지난해 성적은 어땠나.
=<정글쥬스>는 ‘똔똔’(손익분기점 안팎) 정도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꽤 벌었다. 한 10억원 정도? 그 번 돈 중 상당 부분을 <로드무비>로 잃었지만. 결국, 여러 가지 기타 비용을 따져보면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라고 봐야 한다.
-현재 가장 기대가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다 기대가 간다. 아니, 자기가 만드는 영화가 기대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제작자가 천하에 어딨겠나.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다니…. 인터뷰 안 할까보다. (웃음)
-(흠, 흠)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웃는 척)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건,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건,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이건 다들 영화 잘 만든다. 아직 <싱글즈>는 찍어온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일단 <지구를 지켜라!>나 <살인의 추억>은 올해의 영화가 되는 데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흥행으로도 비장의 카드가 될 만하다고 보는가.
=관객의 취향이 어느 쪽으로 잘 맞냐, 그것에 따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아무튼 관객이 좋아할 만한 곳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1년 <봄날은 간다>가 <조폭 마누라>에 무릎꿇은 뒤부터 “나도 코미디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해왔지만, 아직 드러난 건 없다. 생각이 있긴 한 건가.
=코미디를 할 생각이 있다, 없다 식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게 코미디건 뭐건 간에, 내가 영화를 하면서 딱 하나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영화에 삶이 반영돼 있냐, 아니냐다. 물론 ‘쌈마이 코미디’에도 그런 게 녹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삶이 반영된 농도의 문제다. 코미디가 나쁜 영화라는 건 아니다. 나 또한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동의가 안 되는 영화는…. 음식 장사라면 자기가 먹어서 맛있어야 그 음식을 손님에게 파는 것 아닌가. 자신이 느끼기엔 아닌데, 손님이 좋아한다고 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