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요즘 젊은 손님들이 단 것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러면 주방장에게 당도 높여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럼 거기에 설탕을 치면 괜찮은데, 사카린을 넣으면 안 된단 얘기지. (웃음)
-따지고보면 그간 타율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린 최소한 3분의 1 이상은 안타를 친 것 같다. 현재 제작 중인 것까지 해서 모두 25편인데, 개봉한 것은 21편 정도 되는 것 같다. 그중에 심하게 깨진 것을 세보면 <모텔 선인장>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로드무비> 정도? 희생플라이 같은 것도 있다. <정글쥬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작품도 잃지는 않았다.
-타율이나 출루율은 괜찮은데 장타율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린 1번 타자다. (웃음) 가끔 도루도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도루 아닌가. 누가 기대나 했나.
-<무사>의 경우는 대형 타자가 텍사스 안타 친 것 아닌가.
=우린 2루타가 끝이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 <비트>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2루타쯤 될 거다. 내가 볼 땐 우리가 MBC에서 1, 2번 치던 김인식 선수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김재박을 꿈꿨는데, 알고보니 김인식이었다. (웃음) 내 꿈은 제리 브룩하이머인데, 아직 소소한 제작자에 불과한 것 같다.
뭐 브룩하이머만큼이야 아니겠지만, 차승재 대표는 무척 바빠 보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와 방문을 두드리는 직원들 때문에 대화는 자주 끊기곤 했다. 하긴 30편 넘는 시나리오를 굴리고 있는 제작사의 대표가 아니 바쁠 수 있겠나. 그때 <싱글즈>를 연출하고 있는 권칠인 감독이 그간 촬영 진행상황도 알려줄 겸, 제작자 얼굴도 볼 겸 해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우리 칠인이는 영화판에 들어온 뒤 처음 만난 친구야. 세경 기획실에 있을 때 (노)효정이랑 셋이 친하게 지냈지.”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주변 사람 챙기기를 좋아한다. 본인에 따르면 영화를 위해 사람을 챙기는 거지만, 때론 사람을 챙기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실 그동안은 그의 이런 사람 본위의 전략은 성공을 거둬왔다. 그 주변에 병풍처럼 포진한 감독과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기획과 장르 실험을 통해 한국영화의 외연을 넓혀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사람보다는 비즈니스가 앞서는 ‘산업화 시대’에 그의 노선은 시대착오적인 게 아닌가.
-인복은 있는데 돈복은 별로 안 따르는 것 같다.
=아니다. 급하게 맘을 먹으면 돈을 못 번다. 괴롭기만 하고. 좋은 사람과 만나서 어느 정도 좋은 작품을 계속 하다보면 나도 발전하고 내 주변 사람도 발전한단 말이다.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우리 회사도 그만큼 큰 거다.
-그래도 지금 같은 시대에 사람 위주의 시스템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 회사가 영화하다 말썽낸 적 없고, 금전사고 낸 적 없고, 그런 게 다 그런 시스템에서 오는 거다. 막말로 내가 어디서 잘 나간다는 감독을 스카우트해와서 충무로를 시끄럽게 한 적이 있나, 영화 못 만들었다고 감독을 쫓아내길 했나. 그런 식으로 해서 이만큼 왔으면 행복한 삶 아닌가. 사람 위주의 방식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방식의 스피릿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 앞으로도 죽 이 방식대로….
=물론 변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존의 방식 안에서 점차 수정주의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거다. 이 점은 좀 강조해서 써주길 바란다. 우리도 뭔가 새로운 모색을 한다는 것.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할 계획이라는 것 말이다. 요즘 들어 내 안에서 이런 거 저런 게 틀이 잡혀나가는 것 같다. 솔직히 얘기하면, 회사 크기에 비해 나오는 작품의 컬러가 좀 언밸런스한 것 같았다. 그래서 좀더 상업적인 쪽으로 바꾸려고 생각 중이다.
-지금 진행 중인 영화를 보면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기획은 아닌 듯싶다.
=가령 우리가 1년에 6편을 한다면 지금은 2편 정도를 상업적인 쪽에 힘을 주고, 4편 정도 진지한 영화를 하고 있다. 사실, 그런 영화가 흥행이 안 되냐 하면 그런 게 아니거든. 어쨌건 이제부터는 그 비율이 뒤바뀔 것이다. 물론 상업성 있는 영화를 한다 해도, 후행적인 영화는 안 하는 편이다. 코미디가 뜨면 코미디, 조폭이 뜨면 조폭, 이런 식으로. 그동안 새로운 시도로 흥행을 해보려니까 실수도 있고, 기대치만큼 안 되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배우는 건 많다. 아직도 나는 배우는 길이라니까. 제리 브룩하이머가 되기 위해서. (웃음)
-또 브룩하이머라…. 큰 영화에 대한 지향이 있는 것 같다.
=그건 기본적으로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화산고>나 <무사> 정도 사이즈가 돼야 해외시장을 노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 미국, 호주, 일본과 합작하기로 한 <사막전사>(Laundry Warrior)는 어떻게 되고 있나.
=지금 캐스팅에 문제가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인정할 만한 아시아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관건이다. 기껏해야 몇명 없으니까 힘들다. 제작비는 전체적으로 600만달러 정도를 예상하는데 캐스팅이 돼야 분담 비율이 확정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다. 이승무 감독과 할리우드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호주 작가가 각색하고 있다. 미국쪽 파트너가 패트릭 초이니까, 배급선을 잡는 것은 가능하리라 본다. 그리고 한·중·일 합작 프로젝트인 SF물 <센타우리 라이징> <역도산>도 있다.
-오랜만에 정색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한 탓일까. 그는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자뻑성’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나 사실 평생 영화하고 싶거든. 평생 스타일 안 구기고. 과연 차승재가 평생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가야 맞는 길인가는 나도 몰라.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 그나마 해놓은 게 있다면 나는 그거라고 생각해. 영화 같은 영화를 해도 회사가 굴러가는구나, 그럭저럭 회사가 덩어리가 되는구나, 보여준 거지. 상업적 영향력면에서는 별 것도 아닌 내가 <씨네21> 파워50에서 3등씩이나 뽑힌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