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Anxiety, 1978년감독 멜 브룩스출연 멜 브룩스 EBS 2월23일(일) 낮 2시
히치콕에게 바치는 코미디
이 영화, 수상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많은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던 행인이 새떼에 공격을 당하고 샤워를 하는 이는 갑작스런 침입자를 맞이한다. 고소공포증에 얽힌 에피소드 역시 기시감이 들게끔 한다. 어디서 봤더라? 그런 의문은 영화의 초반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히치콕(Hitchcock)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고소공포증>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소공포증>은 히치콕 마니아라면 빠뜨릴 수 없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싸이코>와 <현기증>, 그리고 <새>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멜 브룩스는 1970년대 할리우드의 패러디코미디의 ‘대부’격 존재로 통했는데 이 영화에선 제작, 감독은 물론이고 주연까지 겸하고 있다. 그가 묘한 악센트를 강조하면서 무대에 올라 주제가를 부르는 대목은 <고소공포증>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리차드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자신 역시 고소공포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던 전임 소장을 대신해 요양소의 신임 소장이 된다. 그런데 이 요양소의 공기는 어쩐지 심상치 않다. 한 의사는 벽장 속으로 숨으려 들고 간호사는 독재자처럼 군림한다. 요양소 직원은 정서불안의 징조를 보인다. 리차드는 전임 소장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풀려고 하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다. 게다가 자신이 어느 살인극의 누명을 쓰는 상황에 놓인다. 리차드 소장은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는다.
<고소공포증>은 멜 브룩스 코미디의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캐릭터들은 기존 가치관이나 ‘약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동성애자와 나치주의자, 그리고 SM마니아가 멜 브룩스가 단골로 비틀어 공격하곤 했던 캐릭터들. <고소공포증>에서도 그들은 좀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희화화되고 있다. 영화는 히치콕 스릴러의 철저한 패러디로 일관한다. <싸이코>의 욕실장면, 다시 말해서 살인이 벌어지는 장면을 숏 바이 숏(Shot by Shot), 그러니까 장면순서까지 그대로 베끼는 대목에선 폭소가 절로 터진다. <현기증> 등의 영화를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히치콕 영화의 사운드적 측면, 즉 음향효과에 관련된 스릴러의 문법을 패러디하는 것도 흥미롭다. 멜 브룩스 감독은 <고소공포증>에서 자신의 전작까지 베끼고 있다. <영 프랑켄슈타인>(1974)의 몇 장면을 가져오면서 장난기어린 연출을 과시하고 있는 것. 이렇듯 멜 브룩스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을 비롯해 장르영화를 무작위로 패러디하는 기교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게 테크닉의 영역에 머문다기보다 미국 장르영화의 어느 시기를 ‘요약’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같은 견지에서 멜 브룩스의 코미디는 장르영화에 관한 비판적 인용이라고 할 만하다. <고소공포증>은 이전 멜 브룩스 영화에 비하면 기운이 달리는 듯한 점도 없지 않지만, 즐기면서 보기엔 충분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