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늘고, 심술은 줄었다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는 그의 다른 몇 작품들과 달리, 잘 만들어진 유쾌한 야단법석 이상의 뭔가가 있는 척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반갑다. 이것은 근 십년간 앨런이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웃기고 또 가장 덜 심술궂은 작품으로서 단정한 클라이맥스를 곁들인 소품이다. 지난해의 <스윗 앤 로다운>(Sweet And Lowdown)과 달리 <스몰 타임 크룩스>는 시대극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제공하는 구식 미덕들을 고려해보면 시대극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크리스 웹의 <Stomping at the Savoy>가 흐르는 가운데 프롤레타리아 앨런이 <데일리 뉴스>를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어느 정도 환상적일지는 모르지만 아주 분명하고 확고한 30년대 취향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부르주아의 무릎 위에 편안히 둥지를 틀지 않는 보기 드문 우디 앨런 코미디다. 영화의 배경은 어떻게 손써볼 수 없을 정도의 하류층 사회다. 전과자 출신 접시닦이 레이 윙클러(앨런)와 그의 미련맞은 파트너들(마이클 라파포트, 존 로비츠, 토니 대로)은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눈가림으로 레이의 아내 프렌치(트레이시 울먼)가 운영하는 과자가게를 이용하기로 한다.
레이는 복역 시절 감옥에서 자기 별명이 ‘브레인’이었다는 점에 대해 적이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오히려 나쁜 머리를 비웃는 별명이라고 동료 하나가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상관없다. 은행을 털려고 짜놓은 그의 계획은 초장부터 틀어지는 반면 엉뚱하게도 프렌치의 과자가게가 미친 듯이 잘된다.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식으로, 밀가루반죽이 마구 돈으로 변해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프렌치의 약간 멍청한 사촌 메이(일레인 메이)가 그들의 음모를 경찰에 알린 뒤에도 가게는 여전히 잘되고 번창한다. 1년 뒤 가게는 여러 지점들을 거느릴 정도로 융성하고, 이들 악당 일당은 TV에 “사업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기업문화”의 훌륭한 예로 소개되기까지 한다.
<스몰 타임 크룩스>는 상황과 캐릭터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영화 작가인 앨런 자신이 비쩍 마르고 말 많은 늙은이를 연기하는데, 배우로서의 그는 폴 마줄스키의 <결혼 기념일>에서 베트 미들러와 함께 보여준 것보다 더 나은, 최고의 파트너 연기를 보여준다. 콧소리 섞인 포커페이스 트레이시 울먼과 재빠르고 재치있는 단문 대화를 주고받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파란 재킷과 노란 바지로 반짝반짝 차려입은 레이는 그 요란한 옷차림으로 프렌치의 졸부 히스테리를 잠재워버릴 지경이다. 부부가 꾸며놓은 파크애버뉴 펜트하우스의 화려함이란 보는 이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 정도인데 <Isn’t She Great?>에서 재클린 수잔의 캐릭터가 보여준 ‘새로운 상상력’(Nouveau Imagination)조차도 뛰어넘는 수준이다.
영화의 또 하나 번뜩이는 대목은 프렌치가 자신을 뉴욕 상류사회에 던져넣기로 결심하면서 아이작 미즈라히에게 요리총책임을 맡겨 주최한 파티다.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관 벽에서 곧바로 잡아뜯어온 것 같은 ‘작품’을 걸치고 나타난 프렌치는 손님들이 그녀의 천박함에 대해 수군대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고나서 얼마 안 있어 상류사회 바람둥이(휴 그랜트)를 교양교사로 채용한다. 그리하여 <스몰 타임 크룩스>는 솜씨좋은 세구에(단절없이 다음 악장으로 이행하는 지시 - 역자 주)로 <마돈나 거리에서의 빅 딜>(Big Deal on Madonna Street)에서 <귀여운 빌리>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내내,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과 계급에 뿌리를 둔 풍자, 그리고 잘 조절된 슬랩스틱은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코미디를 연상시키며 시종 솜씨좋게 빚어진다. 또 다른 파티 주최자로까지 나서게 되는 일레인 메이는 단순무식한 불평쟁이 수다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관객 눈을 사로잡는다(게다가 그녀는 우드먼과 함께 아주 인상적인 화학작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특히 마치 대화하듯이 소리를 서로 고래고래 지르는 대목이 그러하다).
탁월하게 짜이고, 생생하게 촬영됐으며, 솜씨좋게 페이스조절된 <스몰 타임 크룩스>는 전통적인 우화이되 호방한 스크루볼 코미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천박함이라는 것에 사랑스런 의미를 부여한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0. 5. 23.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