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의 각인은 놀랍다. 더러는 끈질기기도 하다. 소설의 경우에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무심코 집어든 소설 하나가 우리의 몸에 파고들어 남기는 흔적은 두고두고 옆구리에, 가슴에, 그리고 머리에 흩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 흔적이 어디에 새겨지든 소설을 경험하기에 딱 좋은 때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추리닝 입고 뒹굴어도 누가 저리 서란 소리 한마디 안 하는 무책임한 시절이다. 살다 보면 그런 시절이 듬성듬성 찾아온다. 어쨌든 소설 읽기는 무목적적인 행위이고 그래야만 한다.
민감한 감수성에게는 조금은 철딱서니 없는 낭만의 분위기가 옆구리로 파고든다. 그런 거라면 <바다로 간 목마>의 한수산을 빼놓을 수 없다. 한수산의 작품연보에도 잘 오르지 않는, 70년대 말에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밤의 찬가>. 권투선수와 사랑을 나누는 민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다. 이런 민혜를 만들어낸 한수산에게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를 고문했던 것은 정말 못된 짓이다.
<풀잎처럼 눕다> 역시 주인공 은지 때문에 기억되는 소설이다. 제목은 촌스럽지만 그것은 은지의 청승맞음 때문에 용서가 된다. 소설이 묘사한 그의 모습은 까마득히 잊혀지고 이젠 다른 상상이 그를 그려낸다. 그는 넓고 튀어나온 이마를 가리려고 머리를 늘어뜨렸을 테고, 머리카락 길이는 어깨에 닿을락 말락 했을 테고,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을 테고, 가끔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을 했을 테고, 이 모든 게 도엽이와 동오 사이에서 한껏 청승미를 뿜어냈을 것이다.
청승맞음 하면 조해일의 <왕십리>에 나오는 정희도 뒤지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상왕십리 역을 지날 때면 아기를 업고 다니던 정희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 저기 어디쯤에 살고 있으리라는 착각을 한다. 여전히 슬픈 눈을 하고 있을 테지만.
한반도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가라지만 황석영은 애상을 아는 이다. <몰개월의 새>에는 그것이 있다. 특교대 병사들이 베트남으로 떠날 때 한복입고 배웅하던 새들의 모습은 절절하다. 그 경험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전지도에서 몰개월이란 지명을 발견했을 때 소설은 옆구리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나 문학사적 의의 따위는 알 바 아니요, 소설가와 소설을 구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는지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소설의 감수성을 느끼게 한 첫 경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는 옆구리와 가슴으로 느끼는 걸 지나서 소설이 무엇인지를 머리로까지 알게 해준 첫 경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거 무지하게 재밌다는 한마디로 평을 끝내셨고, 고개를 끄덕거림으로써 깊은 동의를 표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비평까지 찾아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황제를 위하여>에 대한 김현의 평가를 한번 보자.: “<황제를 위하여>는 이문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좋은 소설이다. 그것은 이문열의 무의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통적 문화에 대한 회귀욕망과 거부의지 사이의 섬세하지만 치열한 싸움의 무의식적 결과이다. 그는 전통적 문화에 회귀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려 하지만, 그의 소설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비판한다. <황제를 위하여>는 일종의 모순의 소산이다.”
김현의 단어를 빌려 2003년의 이문열을 말해본다면, 그는 전통적 문화로의 회귀욕망과 그것에 대한 부정적 비판- 아마도 이 비판은 그의 합리적 자아 또는 자각적 의식이 수행했을 것이다- 사이의 긴장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과감하게 전통적 문화에 몸을 던졌다. 가슴 아픈 일이다.
첫 경험이 늘 그대로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래도 그 경험을 안겨준 이들의 팔자가 야릇해진 걸 본다면 슬플 것이다. 그들의 팔뚝에 망가지지 말자는 문신이라도 새겨주고 싶다. 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