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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국화꽃향기>
2003-02-19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야 더욱 아름다운 걸까. `둘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의 후일담을 떠올려보면 구질구질한 일상이 겹쳐지지만, 죽음이 갈라놓은 연인의 사랑은 영원토록 깨지지 않는다.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딱 중간인 28일 영원한 이별을 상징하는 국화 향이 사랑에 빠져 있거나 사랑에 빠지고 싶은 관객을 유혹한다. 수백만 독자의 심금을 울린 베스트셀러 소설 <국화꽃향기>가 마침내 스크린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지난해 <가문의 영광>으로 `돈방석에 오른` 태원엔터테인먼트(대표 정태원)가 제작을 맡았고 <사의 찬미>,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정글스토리> 등의 조감독 생활로 오래도록 내공을 다진 이정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소름>과 <오버 더 레인보우>로 비로소 연기력을 인정받은 장진영과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질투는 나의 힘>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박해일로 짝지어진 캐스팅도 기대를 부풀린다.

헌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에 넉넉하고 따뜻한 인간성까지 갖춘 남자 인하(원작에서는 승우)가 불꽃같은 열정을 지닌 대학 동아리 여자 선배 희재(원작 미주)를 일편단심으로 좇다가 결국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하지만 희재가 불치병에 걸려 뱃속의 아이를 낳자마자 숨을 거둔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

영화는 원작의 얼개를 그대로 따오면서도 주인공의 캐릭터와 배경을 조금씩 변주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영화 동아리는 고전연구회 `글뿌리`로,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남자를 평범하지만 매력적인 성격으로, 영화감독이던 여자의 직업을 북디자이너로 바꾸었다. 동해안 양양의 상운폐교도 남해안 통영 앞바다의 용초도 한지작업실로 옮겨졌다.

두 권의 소설을 109분의 필름에 압축하는 과정에서 극적 장치도 몇 가지 삽입했다. 희재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선배 성호는 약혼까지 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숨져 희재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도 희재로 하여금 남은 자의 아픔을 알게 해 남편과 아기를 두고 떠나는 상황을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뱃속의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주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한다는 설정이나 이 사연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청취자 엽서로 라디오 전파에 실어보내는 상황은 원작과 동일하다.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에 옮기는 일은 양날의 칼이나 다름없다. 높은 인지도가 상대를 향한 날이라면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조차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 수억원의 사전 마케팅 비용을 덤으로 얻는 대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려면 훨씬 힘이 드는 것이다.<국화꽃향기>가 드라마 요소를 높이고 배경 화면에 공을 많이 들인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장진영은 굴곡 많은 10년 세월의 내면 변화를 무난히 표현해냈고 박해일도 신인급치고는 수준급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주인공의 관록이나 무게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화꽃향기>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겨울여자>나 <별들의 고향>이 30여년 전에 세웠던 베스트셀러 흥행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