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1923년 영국 리치먼드 교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는 오늘도 집필 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런던에서 오기로 한 언니를 기다리던 그녀는 예정보다 일찍 온 언니를 보고 반가워하지만, 언니가 가버린 뒤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런던행 기차를 기다린다. 1951년 미국 LA의 주부 로라(줄리언 무어)는 귀여운 아들과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함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탐독하던 그녀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2001년 미국 뉴욕, 출판편집자 클래리사의 집.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래리사(메릴 스트립)는 옛 애인인 리처드(에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 때문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러다 리처드의 헤어진 애인 루이스의 이른 방문을 받고 당황해한다.
■ Review
버지니아 울프가 워즈 강에 몸을 던졌을 때, 그녀의 구두는 벗겨지지만 화면에 클로즈업된 결혼반지는 단단히 그녀와 함께 붙어 있다. 이 장면은 마치 <디 아워스>의 어떤 주제를 아우르는 계시와도 같아 보인다. 그토록 원하던 죽음쪽으로 얼굴을 파묻음으로써 그녀는 겉껍질의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결코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관계를 지울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디 아워스>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가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후대의 로라나 클래리사에 이르면 외형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적 억압은 점점 더 엷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2001년의 클래리사는 1923년의 버지니아가 꿈꿀 수도 없는 동성애 애인이 있고 1951년의 로라는 버지니아와 달리 가출을 하거나 이혼할 수 있는 삶을 누린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여전히 자기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파티를 열고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호텔에 가서 자살을 결행하려 든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첫 장면과 달리 어쩌면 단순히 <디 아워스>가 페미니즘의 발목을 잡는 전략으로 여성 관객을 모으겠다는 속보이는 짓만을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정말로 <디 아워스>는 여자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단순히 여자들의 이야기만은 아닌 영화이다. 주인공들뿐 아니라 <디 아워스>의 모든 인물들, AIDS로 죽어가고 있는 시인 리처드나 자궁에 난 종양으로 병원에 들어가게 된 키티 등은 모두 금이 가기 일보 직전의 위태로움과 허전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윤회를 거듭하는 것 같은 이들의 삶 속에서 영화는 세월의 손을 들어줄 뿐이다.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되풀이하듯 하루는 전 인생을 대변한다.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스티븐 달드리는 이를 위해 낮의 햇살 속에 부단히 죽음의 그림자를 끼워넣는다. 세 여인 모두 화창한 아침을 반가이 맞지만(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좋은 아침이 나오는지 한번 횟수를 세보시라) 달이 차면 기울듯 저녁의 시간으로 스러져간다. 그들은 작은 새의 죽음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도 오직 시간만이 승자라는 것을 감지할 뿐이다. 영화가 암시하는 그 모든 허무한 이미지들의 윤무. 스러지고 말면 그뿐인 눈꽃 같은 밀가루, 꽃들, 아침의 이미지.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세 여인 모두 화창한 아침을 반가이 맞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 저녁의 시간으로 스러져간다. 영화가 암시하는 그 모든 허무한 이미지들의 윤무. 스러지고 말면 그뿐인 눈꽃 같은 밀가루, 꽃들, 아침의 이미지.
그리고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가 도도한 시간의 줄기인 워즈 강에 몸을 내맡긴 순간, 관객의 겨드랑이 밑에는 실존의 푸른 날개가 돋을 것도 같다. 스티븐 달드리는 각기 다른 이 ‘하루’를 통과하는 세 여성의 삶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 시간의 카펫을 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는 여인의 고통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사색이 가능한 그 한순간을 위해, 천번 가위질하고 한번 이어붙이는 시간의 점프 컷에 승부수를 던진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복잡한 일이 어떻게 한 화면 안에서 가능한 일일까? <디 아워스>는 모든 영화적 요소의 ‘어우러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데이비드 헤어의 군더더기 없는 각색, 무엇보다도 피터 보일의 편집과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차분한 연출까지. 카메라는 인물간의 심리적 거리를 정확히 감지하고, 컷과 컷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유롭게 넘나든다.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의식의 서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디 아워스>는 편집이 시간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영화교과서의 가르침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스티븐 달드리는 각기 다른 이 `하루`를 통과하는 세 여성의 삶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 시간의 카펫을 짠다. 그는 여인의 고통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사색이 가능한 그 한순간을 위해, 천번 가위질하고 한번 이어붙이는 시간의 넘프 컷에 승부수를 던진다.
만약 <디 아워스>가 지루하다거나 <타임>처럼 ‘여자들의 희생에 대한 감상적 접근’이라고 폄하한다면 이는 영화로 혹은 여자들이 사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부류의 의견일 것이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구식의 방식일 수 있지만 <디 아워스>는 요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진중한 성찰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한 화면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의 연기 앙상블은 늙어가는 여배우들을 위한 영화가 더 있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심어주게 만든다.
살다보면 영원 같은 하루가 있게 마련이다. 살아온 시간을 직면하는 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될지라도 좀 보라고. <디 아워스>는 그렇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지적인 친구 같은 영화였다.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