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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신문 제 6호(1915~1918) [1]
이유란 2003-02-17

<국가의 탄생> 상영금지

예술적 측면의 호평에도 불구, 인종차별적 시각에 대한 비난 거세

위대한 혁신, 심각한 인종차별주의, 내용과 형식에서 상반된 평가받고 있는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추문으로 얼룩진 걸작의 탄생. 1915년, 미국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를 누리고 있는 데이비드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에 대해 상영 금지라는 혹독한 처분이 내려졌다. 코네티컷, 일리노이를 포함한 일부 주들은 “심각한 인종차별주의”를 이유로 <국가의 탄생> 상영을 불허했다. 이번 조치는 보스턴 등에서 <국가의 탄생>에 반발하는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난 뒤에 취해진 것으로, 현재 이 영화에 대한 반감은 일파만파로 퍼져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 영화에 대해 “빛으로 쓴 역사”라고 상찬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했다. 곧 그는 <국가의 탄생>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뛰어난 기술을 동원한 영화”라고 입장을 바꿨다.

문제가 된 것은 보수적인 남부인의 시각에서 흑인을 교활하고 추잡한 야수처럼 그리고 KKK단의 탄생을 정당화하는 한편, 남북전쟁의 의미를 왜곡했다는 점이다. <네이션> 편집장 오스왈드 빌라드는 “천만의 미국인들을 모욕하고 그들을 짐승으로 그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그리피스는 ‘인종문제의 해결법은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임을 암시하는 에필로그 등 558피트를 잘라냈지만,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국가의 탄생>만큼 영욕이 교차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12월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공개 이후 언론으로부터 만장일치의 격찬을 받았다. 3월12일치 <버라이어티>는 “일간지들이 <국가의 탄생>를 두고 영화 최후의 일성이라고 부르고 있다”라고 전했다. 흥행도 대성공이어서 1915년 전국적으로 8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또한 ‘12릴이나 되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누가 보러 오겠는가’라는 불안감에서 배급을 거절한 전문업자들을 대신해 직접 배급에 나섰던 그리피스는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한편,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탄생>을 목격하러 가는 행렬은 아직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의 탄생>은 어떤 영화교차편집의 힘!

<국가의 탄생>은 1908년 <돌리의 모험>으로 데뷔한 이래 다양한 장르, 다양한 영화기법을 실험해온 그리피스의 예술가적 야심이 최대로 구현된 작품이다. 토머스 딕슨 주니어의 소설 <문중 사람>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북부와 남부의 두 가족의 역정을 중심으로 남북전쟁, 그리고 이어진 재건시기를 관통한다. 친했던 북부의 스톤맨가와 남부의 카메론가는 전쟁으로 적으로 갈린다. 흑인해방을 지지했던 국회의원 스톤맨은 종전 뒤 국회에서 급진 개혁파를 이끈다. 반면 카메론가는 흑인들의 약탈로 모진 수모를 겪게 되고 흑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아들 벤은 KKK에 가담한다.

바이오그라프사를 떠난 그리피스가 여기저기에서 11만달러의 제작비를 끌어모아 만든 <국가의 탄생>은 리허설에 6주, 촬영에 9주가 걸린 작품이다. 그리피스는 클로즈업, 파노라마 촬영, 플래시백, 페이드 인과 아웃 등의 기법을 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교차편집’이다. 상이한 이야기를 교대로 보여줌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편집을 실험해온 그는 <국가의 탄생>에서 교차편집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편집에 대한 그의 유별난 관심은 이 영화 편집에 3개월이 걸렸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특히 압권은 실라스 린치에게 감금된 엘시 스톤맨이 KKK단에 의해 구출되는 영화의 마지막 대목. 그리피스는 순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엘시 스톤맨과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KKK단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이때 각 숏의 지속시간을 점점 줄임으로써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나타난 인종차별적인 흑인 묘사는 심각한 오점으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도전 인터뷰“차별 보고 들은 대로 그렸다”

극단의 찬사와 비난. 이 소용돌이의 와중에서 <국가의 탄생>을 만든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판에 맞서 <국가의 탄생>을 옹호하기 위해 그는 <미국에서 말할 자유의 생성과 몰락>이라는 팸플릿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팸플릿에서 정작 중요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가의 탄생>에 대한 공격이 심해지고 있다.

그런 비난을 들으면서 깊이 상처받았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영화보다 위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맘먹었다. 동시에 미국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를 완성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 대한 공격은 내게는 마치 미국 문명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슬프다.

사람들은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데.

인종적 편견은, 사실, 무의식적인 것 아닌가 난 남부 사람이다. 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남군 대위로 전쟁 영웅이었다. 남부인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난 명예, 기사도, 순수 같은 남부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 점에서 딕슨의 소설은 내게 매력적이었다. 난 보고 들은 대로 영화에 그렸다.

일부 주에서는 상영금지 조처를 내렸다.

명백한 검열이다. 영화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 나라에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예술을 장악한 편협한 권력들은 영화를 구실로 삼아 자유를 공격하고 있다. 편협은 모든 검열의 뿌리다. 편협이 잔다르크도 순교시켰다. 편협이 최초의 인쇄매체도 날려버렸다. 다음 영화에서는 바로 그 편협한 권력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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