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고민도 없다...여하튼 엄청 웃긴다걱정 마시라. 감독의 고민과 자의식에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라는 제목만으로는 몇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여교사와 사춘기 제자가 벌이는 에로틱 영화나 계급적 차별이 화면을 벌겋게 달구면서도 애절한 사랑이 오가는 영화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순수하고 코믹 멜로 드라마의 규칙을 적절하게 준수하는 영화다. 꿇은 고3인 부잣집 아들 지훈(권상우)과 과외 선생 수완(김하늘)은 동갑이다. 이 설정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이미 게임에 접어들게 된다. 과외 교습이 성사될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 과외를 유지시킨 것은 수완의 능력이 아니라 지훈의 사고와 그 사고를 모면하기 위한 약속 덕택이다. 또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둘의 사랑 게임에 주목할 것이다. 둘이 밋밋하게 과외 교습만을 대상으로 밀고 당긴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당연히 둘은 어떤 계기로 적당히 감정을 품게 되고, 사랑을 밀고 당긴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이 영화에는 아무런 고민도 없다. 여하튼 엄청 웃기는 영화다.걱정 마시라. 적어도 이 영화는 우리를 불쾌하게 자극하지는 않는다. 뜻있는 많은 이들은 개탄했다. 최근의 한국 흥행성 영화들은 쓰레기라고.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뜻있는 자들과는 달리 몇 백 배나 더 많은 젊은(혹은 어린) 관객들이 그런 영화들을 즐긴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이 엄중한 사실은 쓰레기를 재활용해야 한다는 임무를 안긴다. 그 임무를 떠맡은 이들이라면 기꺼이 대중의 바다로 나와야 한다.그렇다면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이 영화가 조폭 영화나 얼토당토않은 넌센스 코미디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지훈과 수완이 각각 조직 건달 출신의 아빠와 5공주 출신의 엄마를 대응하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둘은 져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기는 전술을 택한다. 한편으로는 사랑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조롱이다. 관객의 소소한 쾌감이 터지는 순간이다.또 대부분의 흥행 영화들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면서 관객에게 아부하는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재기발랄한 대사로 관객의 예상보다 앞선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말은 시대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표정으로는 무시하며 말로는 무안 주고 짓밟는 등, 그것은 우리 시대의 인간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그것을 봉합한다. 이 삭막하고 외로운 시대는 칠천 원어치의 위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걱정 마시라. 이 영화는,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간지러운 품격으로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 것이다. 물론, 오래 갈 미소는 아니지만.이효인/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