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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금전 영화의 업그레이드?<와호장룡>

와호장룡

臥虎藏龍 2000년, 감독 리안 출연 주윤발 MBC 2월1일(토) 밤 9시45분

“내 영화는 음악에서 음표를 연주하듯 찍은 장면이 적지 않다.” 무협영화의 거장 호금전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협녀>(1971)는 호금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협녀>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대나무숲에서 칼싸움을 벌이는 무사들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와호장룡>은 호금전 영화를 업그레이드한 것 같다. 허공에서 날아다니면서 담을 타고, 대나무 사이를 누비며 유영하는 이의 모습은 진기한 구경거리다. 영화를 만든 리안 감독의 행보는, 간단하게 요약하기 힘들다. <결혼 피로연>이나 <음식남녀>(1994), <아이스 스톰>(1997)처럼 가족에 포커스를 맞추었다가 <센스, 센서빌리티>에선 19세기 영국으로 날아갔으며 또한 <와호장룡>에 이르러선 중국 무협의 세계에 안착한 것이다. 리안 감독의 영화는 장르영화 어법에 의존하기보다, 엇비슷한 주제를 서로 다른 양식에 의존해 변주하는 것에 가깝다.

잠시 줄거리를 요약해보자. 무당파 검술의 대가 리무바이는 은퇴할 결심을 한다. 수련을 찾아간 그는 청명검을 맡기고 자신의 결심을 털어놓는다. 곧 결혼하게 될 용은 수련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 어느 날 도둑이 청명검을 훔쳐가고 수련은 도둑을 뒤쫒지만 검을 되찾는 것엔 실패한다. 리무바이와 수련은 이 사건에 ‘푸른 여우‘가 관련되었음을 알게 된다. <와호장룡>의 영화구조는 도식적인 구석이 없지 않다. 영화는 몇개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먼저, 청명검이라는 검에 대한 사연이 앞부분에 배치된다. 변장한 용은 수련의 추격을 따돌리고 검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영화는 리무바이와 용의 관계에 집중한다. 사제관계를 중시하는 무협영화의 클리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와호장룡>은 후반으로 향할수록 멜로드라마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한다. 리무바이와 수련, 그리고 용의 에피소드가 끼어들면서 오랜 시간 동안 내밀한 사연을 간직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계별로 스테이지가 변화하듯 영화의 플롯은 구획별로 진행되고 있으며 ‘여성‘ 캐릭터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식에 힘입어 영화는 생명력을 얻는다.

<와호장룡>의 앞부분에서 수련은 용에게 설명한다. “강호에선 무엇보다 신의가 중시된다”고. 영화 서두에 화려한 액션을 과시하는 것 역시 수련과 용이라는 여성 캐릭터들이다. <음식남녀>와 <센스, 센서빌리티>에서 그랬듯 리안 감독은 <와호장룡>에서 가부장을 중심에 둔 채 전개되지만 전체적으로 ‘여성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의 틀을 짜낸다. 영화구조가 튼실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역시 동일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와호장룡>은 동서양 관객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를 지닌, 매끈한 상업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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