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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 정년 및 출판기념회를 가다
2003-02-05

학연을 극복하는 길

정년기념식도 가보고 출판기념회도 숱하게 가보았지만 두툼한 책을 여섯권이나, 운반하는 팔이 아플 정도로 보따리로 받아오기는 처음이다. 전집이라면 뭐 그런가보다, 횡재했구나 하겠는데(워낙 수금원쪽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나는 좀체 행사장 회비를 안 내는 편이고, 딱히 혹은 감히 내라는 사람도 없다. 그건 심지어, 철통 같이 닫힌() 공연장 입장 때도 그렇다) 그것도 아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당사자가 직접 쓴 저서는 산문집 1권과 논문집 1권뿐이고, 나머지는 한국 좌파지식인 사상의 현주소를 한눈에 짐작해볼 수 있는 편저로 두권, 그리고 진보적 사회학계의 핵심들이 모인 한국산업사회학회 회원들이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정을 모은 정년기념 논총이라는 점이다.

책제목(들)은,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 <21세기 진보운동의 기획> <사회이론과 사회변혁> <노동과 발전의 사회학> 그리고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 1, 2>이고 출판사는 박종철출판사와 문화과학사, 그리고 한울아카데미…. 이만한 형식과 이만한 출판사, 그리고 ‘저항’, ‘기억’, ‘노동과 발전’, ‘이론과 변혁’을 거쳐 ‘기획’까지, 경륜과 참신한 전망을 한데 아우르는 용어와 내용을 한꺼번에 한날 한시에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딱 한 사람이다.

김진균. 그는 1968년 서울대 교수(당시 상대 전임강사)가 된 이래 교수운동은 물론이고 노동운동, 전교조운동, 심지어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까지 물심양면 도왔고 학문과 경륜을 보탰다. 그의 단체대표 혹은 공동대표 이력을 보니 100가지가 넘는데, 노희찬(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축사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모태가 된 진보정당 창당주비위 공동대표 이력이 빠졌다며 공식 첨가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말마따나 ‘김진균이 겪은 대통령 예닐곱이 고인이 되거나 폐인이 된 마당에, 그리고 그 대통령들 밑에서 행정에 통달한 사람이 다시 총리가 되는 마당에’ 김진균의 존재는 그의 아호 그대로 청정하다. 그렇다. 제대로 된 운동은 이(以) 세속 치(治) 세속으로 사람을 청정케 한다.

서관모(사회학과 교수)는 각계각층과 젊은이들로 행사가 대성황을 이뤘음에도 스승에게 내내 ‘미흡해서 죄송’하다는 내색으로 쩔쩔맸고, 최갑수(서양사학과 교수)는 ‘정년기념식에 이렇게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다소 들떠 있었다. 그러고보니 깐깐한 교수들 위주로 모인 행사를 두 시간 동안이나 잘 참았군. 여기는 격식이 딱딱하고 내용이 희멀건 ‘학연’ 행사 분위기는 좀체 없는 것 같아…. 학연의 문제 또한 미래 전망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자세로 극복되는 것임을 알겠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