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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의 할리우드 통신
2003-02-04

유대인 학살 vs 아동 학대. 과연 아카데미위원회는 어느 쪽에 더 큰 무게를 실어줄 것인가.오는 11일 아카데미 후보발표를 앞두고 할리우드의 촉각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지명 여부에 쏠리고 있다. 칸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그의 최신작 <피아니스트>가 할리우드가 가장 선호하는 주제의 하나인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진지하게 다룬 수작으로 찬사를 받고 있지만 감독의 사생활과 관련된 전력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스키는 지난 78년 30살 연하의 13살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뒤 선고공판 직전 프랑스로 날아간 뒤 지금까지 체포위험성이 있는 미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폴란스키를 둘러싼 논쟁은, 4년전 평생공로상 수상 때 기립박수를 거부당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에 이어 다시 한번 아카데미위원회를 도덕적 딜레마에 빠트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배신행위가 문제가 됐던 카잔과 달리 폴란스키는 순전히 개인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차이가 있다. 찰리 채플린(미성년자 추행), 휴 그랜트 (창녀 스캔들) 등 법적·도덕적 문제를 일으켰지만 할리우드의 용서를 받은 과거의 예를 들어 이미 25년이 넘게 망명생활을 하며 죄값을 치룬 폴란스키를 이젠 용서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미성년자 추행 만큼은 끝까지 용서할 수 없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특히 최근 미국사회에서는 어린이 유괴살해사건, 인터넷 아동 포르노의 범람, 카톨릭 신부들의 소녀성추행 추문들이 잇달아 아동학대에 대해 유난히 여론이 민감한 분위기다. 반면 <피아니스트>가 감독의 반(半)자서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태인학살의 피해자인 폴란스키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치가 않다. 7살 때 나치의 바르샤바 침공을 겪은 폴란스키는 철조망 밑으로 구멍을 파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어머니를 잃었다. 홀로코스트와는 상관없지만 1969년엔 임신한 아내 샤론 테이트가 찰스 맨슨 사이비종교집단에 의해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기도 했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폴란스키 논쟁과 관련해 당시 피해자였던 소녀와 익명의 인터뷰를 했다. 세 아들을 둔 39살의 유부녀로 하와이에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오래 전 폴란스키를 용서했으며 그가 미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의 망명생활로 죄값을 치뤘다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폴란스키가 미국에 돌아오게 되면 더 이상 그와 연관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피해자의 용서가 아카데미 투표단의 용서로 이어질 것인지, 설령 폴란스키가 후보지명이 된다 해도 수상자로 최종 선정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수상자가 직접 오스카 트로피를 받으러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당황스런 장면을 아카데미 위원회는 피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폴란스키가 선고공판을 받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미국에 입국하게 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선고를 받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시상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