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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 대표 심재명 인터뷰 [1]

˝난 양극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1월22일 오전 11시,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를 만나러 서둘러 혜화동에 있는 명필름 사옥을 찾는 길에는 가는 눈발이 뿌리고 있었다. 겨울날, 오전의 청명한 공기를 맞으며 눈내리는 혜화동 주택가를 걸어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겠지만, 이런 날은 누굴 만나도 괜히 반가워진다. 오래된 한옥이 듬성듬성 보이고, 눈을 맞은 강아지가 골목길로 뛰어나와 겅중거리며, 큰 길에서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한가하다. 명필름 사옥은 바로 그 초등학교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면 나온다.

희고 깔끔하고 전면 유리창이 있는 모던한 건물, 명필름이 여기 사옥을 만든 것은 2년이 채 안 된다. 명필름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 때까지는 길 건너편에 임대한 낡은 한옥에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렀던 건 아니지만 피카디리극장 옆건물에 있던 비좁은 명기획 사무실부터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 회사의 성장이 사람이 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회사도 사람과 비슷하게 나이를 먹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심재명 대표도 사옥을 지으면서 자기 집을 처음 소유한 사람의 기쁨을 느꼈으리라.

누군가는 평생 못 갖기도 하고 아니 갖기도 하지만, 만사가 그렇듯 집을 지으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새로 시작된다. 명필름 역시 그랬다. 사옥을 짓고 지금까지 명필름은 전보다 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 명필름은 <버스, 정류장> <후아유> 등 세편을 개봉시켰고 <욕망> <질투는 나의 힘> 등 2편의 제작을 끝냈다. 2000년까지 1년에 한두편 제작하던 것과 비교하면 명실상부한 메이저 제작사의 면모다. 하지만 의욕과 열정에 비해 결과가 썩 좋지는 못했다. <공동경비구역 JSA>까지 손해보는 영화가 거의 없던 것과 대조적으로 지난해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없었다. 창 밖의 눈내리는 풍경을 보며 이야기하기엔 다소 심란한 얘기지만 심재명 대표에게 지난해 명필름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는 이런 질문을 피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다. 마케팅 컨셉을 잡을 때도 그렇지만 심재명 대표는 솔직함의 미덕을 신뢰한다. 그것이 명필름의 힘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안다면 굳이 빙빙 돌려 질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난해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 얘기부터 하자. <버스, 정류장>과 <후아유>는 손해를 본 게 확실한데, <YMCA야구단>은 돈을 벌었는지.

=‘똔똔’(손익분기점) 맞출 거 같은데.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데 그 정도인가.

=전국 160만명.

-전국관객 160만명으로 수익이 안 난다는 얘기인데….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순제작비가 42억원, 마케팅비 합쳐서 총제작비는 57억원 들었으니까. 시대물이다보니 돈이 많이 들더라. <취화선> 제작비는 이상 들었을 거다.

-어쨌든 그 정도 영화로 돈을 못 벌었다는 건 프로덕션 과정에 어떤 문제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버스, 정류장>과 <후아유>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처음부터 리스크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고 <YMCA야구단>은 될 줄 알았는데…. 관객 성향이 변했다는 생각도 들고 제작비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관객의 성향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의 평균 나이가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 비슷한 유의 코미디만 흥행하는 것을 보면. <YMCA야구단>은 코미디에다 시대물, 그리고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라는 조화가 관객에게 아주 세게 다가올 줄 알았는데…. 일종의 퓨전적 합체인데 예상보다 네거티브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요즘 코미디는 같은 코미디라도 쿨하고 점잖은 것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요하는 영화가 잘되지 않나. <YMCA야구단>은 너무 얌전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자체에 대한 반성은 아니고 성향의 차이 같은 게 드러난 게 아닐까.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버스, 정류장>이 흥행에 실패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후아유>는 조금 달랐던 거 같다. 기획 자체의 맥락이.

=웰메이드한 대중영화를 목표로 했으니까 기획부터 분명 달랐다. 그동안 제작 관행이 캐스팅하다 캐스팅이 안 되면 영화 자체를 접는 식이었는데, 우리는 그건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다는 거니까. 우린 캐스팅 안 돼도 끝까지 간다, 캐스팅 안 돼서 지연시키거나 포기하는 건 제작사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라는 거다. <후아유> 같은 멜로드라마는 스타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안 돼도 그냥 밀어붙였던 거다. 완성도에 최선을 다하면 스타가 나오지 않아서 부족한 면을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고. 결국은 안 됐지만…. 배급시기도 문제였던 거 같다. 월드컵이라는 특수상황을 예측 못한 채 개봉했으니까.

-명필름은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로 유명한데 지난해 영화를 보면 마케팅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지.

=이전에는 남들이 안 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마케팅을 했고 그걸로 관객을 끌어들였는데…. 이제는 유통이나 배급이 중요한 거 같다. 영화에 들어 있는 내용이나 컨셉을 살리는 것보다 어떤 시기에 어떻게 배급하느냐가 마케팅을 좌우하니까. 어떤 면에선 마케팅은 평준화되고 있고 배급이 마케팅을 대체하는 거 아닌가. 지난해 <집으로…>의 경우, 유독 마케팅이 영화를 살렸다거나 죽였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 같고, 영화를 판단하는 능력, 그것을 풀어가는 능력, 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것들도 중요한 마케팅이었던 거 같다.

-지난해 기획영화로 성공한 사례로 <폰> <가문의 영광> <몽정기> <색즉시공>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영화들이 성공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폰> 같은 경우는 소재 자체가 좋은데 그걸 공포영화가 없던 여름 끝물에 붙여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고 틈새시장을 공략한 거다. 대중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리고 <몽정기>나 <색즉시공>도 그런 면에서 수요가 있지만 공급이 없던 틈새시장이 있는데 그걸 파고들어간 거라고 본다.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보스상륙작전> 같은 경우도 추석 직전에, <가문의 영광> 1주일 전에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전략이 먹힌 거 같고.

-어떤 면에선 기획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예전과 달라진 느낌도 든다. 기획영화하면 일단 스타 캐스팅부터 떠올리곤 했는데….

=얼마 전에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사한 걸 보니까 관객이 영화 보러 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64%가 어떤 스토리냐, 어떤 이야기냐더라. 그 다음에 어떤 장르냐를 보고. 어떤 감독이냐, 어떤 배우냐는 다음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할리우드도 그렇게 가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할리우드 스타 파워는 많이 죽었다.

=엄청난 스타가 나와서 1억달러 넘는 게 아니잖나. <트리플X>를 봐도 그렇고 <스파이더 맨>을 봐도 그렇고.

-지난 연말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하향평준화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창동 감독님 영화도 나오고 그러지만 상업주의영화에선 그런 측면이 있는 거 같다. 한국영화가 잘되고 있다지만 관객이 한국영화를 보고나서 야, 이건 정말 내 인생의 영화야, 라고 하냐 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흥행적인 경쟁력이 세지고 있는 반면 그런 점에서 질적으로 낮아지는 거 아니냐 싶다. 놀란 게 다들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는데 다 다르더라. 그건 아마 자기 위치가 어떠냐, 자기의 영화 취향이 어떠냐에 따라 다른 거 같다. 질적, 양적으로 공히 성장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다.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영화들이 양극화되는 거 같다. 작가주의영화거나 흥행영화거나. 과거에는 작품성도 있고 흥행성도 있는, 그런 영화를 선호했다면 이제는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관객 성향도 변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명필름은 어디로 가야 하나. (웃음)

=큰일났다. 우린(웃음)… 두 가지 다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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